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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1. 2020

내 두발로 서야 한다

3장 : 깊은 바다의 물고기는 물이 뭔지 모른다 _ 6화

도전! 그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공포가 없어야 가능하다. 두려움이 있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한번 겁을 집어 먹으면, 제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분간조차 못하게 되어 접시 물에 코를 박는 것과 같은 일을 겪게 만든다.


나는 물을 두려워한다. 물에 대한 공포는 어릴 적에 생겼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느 해 무더운 여름날 온 가족이 야외 수영장을 찾았다. 그 당시는 따로 ‘유아 풀’의 개념이 없어서 매우 깊은 물에서도 튜브와 꽃무늬 수영모만 있으면 마음껏 물장구를 칠 수 있었다. 그 동네 꼬마들이 다 모였으리라. 수영장에는 알록달록한 튜브를 가슴팍에 밀착시킨 꼬마들로 바글거렸다. 손이 닿는 수영장 가장자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사람이 적은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 나는 수영장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려 발차기를 하기 시작했다. 수영장의 중앙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나의 발을 누군가 물밑에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방심했던 나는 튜브에서 미끄러져 물속으로 머리가 잠겼다. 다행히 손은 튜브를 꽉 붙들고 있었다. 물속의 상황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사내아이가 내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까마득히 먼 깊은 물속에서, 그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저 소년은 나를 죽이려는 듯 표정이 심각하다. 놀라서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 잡힌 발을 마구 휘둘러 그 소년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물 밖으로 겨우 고개를 내민 나는 그제야 소리를 질렀지만, 주변에 모든 꼬마들이 꺅꺅거리고 있었으므로 나의 비명은 좋아라 외치는 그것들에 묻혀버렸다. 

시끄러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물속에서 ‘라이프가드’가 한 소년을 건져냈다. 그렇다. 그 소년은 조금 전까지 나의 발을 잡아끌던 소년이다. 그 소년은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려고 나를 잡은 것이었다. 물 밖으로 끌려 나온 소년은 다행히 의식이 있었지만 얼굴색이 푸르스름한 보라색이었다. 내 발길질에 맞아 푸른 것인가? 나는 그날 물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죄책감의 공포까지 경험해야 했다.


물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는 수영을 배우면서 극복해 나갔다. 30대 초반부터 수영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이제 웬만한 깊은 곳에 들어가도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바다에 들어갈 때에는 구명조끼를 입는다. 깊은 바다, 내 발 밑에 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아직도 나를 엄습하기 때문이다. 


서핑의 성지인 발리에서 나와 친구는 서핑에 도전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초보들은 수면이 얕아지는 간조 때를 맞춰 이른 아침에 바다로 나가야 한다. 초보들의 얼굴은 선 크림으로 범벅이 되어있으며, 거대한 초보 용 보드를 끌고, 더 거대한 파도를 바라보면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초보라고 작은 파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영어 초보자가 천천히 말해주기를 바랄수록 더 빠르게 여러 번 말하는 외국 항공기 승무원처럼…, 내 뜻대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해변에서 보드를 깔아놓고 엎드렸다가 일어서기를 수차례 연습한다. 이미 땀범벅 녹초가 된다. 그만하면 됐다 싶을 때 바다로 들어간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만들어 주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긴 파도, 그 파도가 부서지는 곳에 있다가는 나도 가루처럼 산산이 부서질 것 같다. 

나는 ‘수영을 잘하는 자’였으므로 해변에서 먼 곳까지 나선다. 같이 발리 서핑에 나선 친구는 ‘수영을 못하는 자’였으므로 해안가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한다. 파도를 탄다. 파도의 높이가 나를 들어 올린다. 일어서면 속도가 제법 따라붙지만, 균형을 잡으며 일어서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의 곤두박질 후에 제법 보드 위에서 내 두발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허공에 팔을 퍼덕거리며 나와 부딪히는 낯선 초보에게 인사도 건넬 만큼 여유가 생기면서 재미도 생겨났다. 

‘오호라! 이 재미에 하는 것 이구만’. 

친구는 아직도 해변 가까운 곳에서 계속 바다로 곤두박질 중이다. 두발로 일어서는 서퍼의 여유라니…. 파도가 더 커지기 시작한다. 

‘이 정도쯤이야!’

교만은 위험하다. 파도를 쉽게 봤다가 완전히 꼬꾸라졌다. 바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물을 한 바가지 마셨다. 물 밖으로 겨우 올라와 보드 위에 몸을 올렸다. 코치는 멀리 있었다. 나는 해변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멀리서 코치가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뭐라는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스탠! 스탠!”

“왓?!”

그 순간, 그가 왜 나에게 소리치는지 알게 됐다. 파도가 부서지는 지점에 도착한 나는 보드와 분리되면서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나의 발목은 아직 보드와 연결되어 있었다. 나보다 가벼운 보드는 단번에 저 멀리 해변까지 떠 날려간 상황이었고, 나의 몸뚱이는 보드에 질질 끌려 다녔다. 발목의 연결선에 손을 댈 사이도 없이 파도와 모래에 쉴 틈 없이 휩쓸리고 얻어맞고 있었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은 순간에 코치가 도착해서 나를 건져냈다. 그는 나에게 계속 일어서라고 소리친 거였다. 해변에 도착하기 전에 발목의 줄을 풀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일이지만 이미 몸으로 체득해 버렸다. 머리엔 혹이 나고 양쪽 무릎은 모래에 긁혀 붉은 살을 드러냈다. 온몸 곳곳에 모래가 안 박힌 곳이 없었다. 서핑에 대한 도전은 첫날부터 절로 몸서리쳐지는 트라우마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찬 서리에 움츠러든 마음은 마지막 레슨까지 날개를 펴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의 서핑 레슨이 끝난 후 생각해보니…. 안 되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즐기는 자가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저 깊은 물속에서 나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공포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두려움이 아닐 수도 있다. 트라우마는 뇌 손상이 아니다. 수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 극복되지 않는 두려움이 나를 안전한 육지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극복하지 못할 두려움에 졌다고 생각하기 싫은 나의 오기가, 나를 바다로 이끈 것이라면 그것은 무의미하고 심지어 덧없기까지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후에 석양빛을 받으며 멋진 실루엣을 선보이는 서퍼는 영원히 못 될 터이지만…. 그럴싸한 구실은 덤으로 생겼다. 발리에서 일주일이나 배웠는데, 왜 서핑 안 하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제 이렇게 말한다.

“난 이렇게 작은 파도에서는 재미없어 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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