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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임 Jan 10. 2022

BC 3000, 여와와 복희의 신혼여행, 중국의 창조

한민족의 시작

기원전 3000년 경, 아사달의 린 여와와 릴인 복희가 결혼했다. 이곳은 아느가 아니였기에 혼인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여와와 복희는 삼묘를 향해 신혼여행을 출발했다. 아사달에는 린과 릴이 많았다.



당시 삼묘족은 지금의 운남, 귀주, 광서 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국의 동쪽에는 산둥성에서 장시성까지 남북으로 이어지는 길고 넓은 대습지가 있었다. 물을 싫어하는 황토고원의 회화족은 대습지 때문에 바다로 다가갈 수 없었다.



당시 배달한국에서 삼묘족에게 가는 길은 대습지의 동쪽 해안가를 따라 베트남 위쪽으로 해서 갔다. 그러나 이맘 때 중국 내부를 통과하는 길이 만들어졌다. 둘은 서쪽을 향했다.     

     



황토고원 인근을 지나던 중, 거기서 다 죽고 멸종 되고 있는 황토고원의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 여와는 그들을 치료하고 먹고 살 수 있게 농업을 전파해 주었고 쉴 수 있는 집 짓는 기술을 알려줬다. 처음에는 약이 되는 풀을 알려주고 돌 도끼, 돌 무기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러는 중 복희씨는 삼묘족으로의 여정을 재촉했으나 여와는 좀 더 돕기를 원했다.     

그래서 복희씨가 홀로 삼묘족에게 갔고 다시 여와를 향해 황토고원을 찾았다.     

     



복희를 재회한 여와가 이들에게 좀 더 많은 지식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에 역학, 달력, 치수와 글자 등을 알려준 복희씨는 이제 아사달로 돌아가자고 여와를 설득했다. 단순한 신혼여행이 아니라 삼묘족을 경유하는 이들에게 맡겨진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와는 복희 혼자서 임무를 완성한 후 다시 이곳에 돌아오기를 간청했다. 복희는 홀로 아사달로 돌아가 임무를 마쳤다.          




이제 황토고원의 사람들은 1년 365일인 것과 글자와 달력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고, 계절 따라 씨앗 파종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무리도 커졌기에 이들은 여와를 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래서 감사의 표시로 이들은 여와에게 가장 고귀한 것을 진상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가진 어떤 것보다 고귀한 것이 여와였다. 이에 여와를 반 토막 내었고 하반신으로 요리를 해서 여와에게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이미 여와는 사망한 이후며, 당연히 그들의 정성은 인정받지 못 하게 되었다. 이들은 난리가 났다. 여와가 자신들을 버렸다느니, 여와가 마음이 떠났다느니 난리였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가 하반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고, 그래서 커대한 뱀을 잡아 하반신으로 붙여 버렸다.        



  

이와중 복희가 다시 왔고 반인반수의 여와의 시체를 보게 되었다. 엄청 화가난 복희는 가지고 있던 활과 노천석유를 이용하여 이들을 죽이고 또 이들의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복희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불을 여기저기 던져버렸다.      



    

하늘이 노했다 라는 말이 이 사건에서 비롯된다.               

하늘이 노하자 야만족들은 곧바로 엎드려서 용서를 구했다.     

     




그러고선 저희들은 최대한 공경하려고 했던건데 왜 그러십니까?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만들어 낸 백성들이었다. 다 죽여 버리기엔 여와의 간절함이 담겨 있어서 죽일 수가 없었다. 이들은 몰라서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복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그리고 선언을 했다.    



      

여와는 하늘로 돌아갔다. 그리고 엎드린 너희들은 영혼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여와를 죽여서 고기를 먹고 도망간 이들은 영혼을 부여 받지 못했다.          




그래서 황토고원의 사람들은 여와에 의해 만들어져서 영혼이 있는 만다린과 영혼이 없이 그냥 흙탕물로 막 만들어진 일반인으로 구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왕이니 황제가 될 수 있는 존재는 만다린 밖에 없었다.          




한편 복희는 이미 죽어버린 여와를 아사달로 데리고 갈 순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만다린들에게 명했다. 높은 산에 무덤을 만들어라. 여와에 대해 계속 제사 지내라. 그리고 제사 지내야 하니깐 좀 더 자세하게 날짜 개념을 알려줬다.          




그리고 복희는 높은 곳에 있으면서 이들을 감독했다. 또 쓸데없는 짓 하면 활 쏴서 죽여 버렸다. 워낙 화가 났다 보니 밤낮 없이 일을 시켰다. 불을 던져 밤에도 일하게 했다.       



   

그래서 미개했던 황토고원의 사람들은 여와와 복희를 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황토고원의 사람들은 그림으로 조각으로 신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상반신은 여와, 하반신은 뱀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이것들이 막 섞여서 뱀꼬리는 여와, 몸통은 복희 이런 식으로 자웅동체로 그리기도 했다. 부부는 한 몸이라고.              




그러고 난 다음 여와를 이곳에 매장하고 숭배하게 시켰다.   





       

이렇게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서왕모다. 여와에 대한 수묘인들, 수묘인들의 장이 서왕모이다. 수묘인들이란 지배자의 묘를 대를 이어서 지키는 자들로서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왕릉 같은 경우는 50명 수준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서왕모한테 좋은 것을 바치게 했다. 서왕모는 1대, 2대, 3대 이런 식으로 내려갔다         



              


      

복희 입장에서 여와를 잊고 그냥 아사달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서왕궁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복희가 머물렀다. 그러면서 복희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모아서 가르쳤다. 하지만 기분이 완전 나빴다. 그래서 아사달의 규율을 명확하게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아사달의 지식을 전파했다. 술을 엄청 마시다가 화나면 나가서 활을 들고 중국인들을 멸했다. 두려웠던 중국 여자아이들이 복희한테 더욱 충성을 맹세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복희는 지식을 꾸준히 전수하게 되는 거였다.           



    

결과적으로 아사달의 많은 지식이 서왕궁에 남게 되었다. 릴이면 상당한 수준이다. 몇 십 년이 더 지난 다음 복희는 아사달로 돌아갔지만 서왕궁에는 수많은 지식이 남게 되었다.          

     




황토고원 사람들 입장에서 서왕궁에 가보면 완전 성지가 되었다.     




그 전까지는 왕이 되기 위해서는 아사달에 갔어야 만 했다. 하지만 이젠 서왕모에 다녀오면 왕이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정리하면     



여와가 죽은 다음 산위에 여와의 무덤을 만들고 여와의 묘로써 만든 게 서왕궁이다. 서왕궁에 복희가 머물며 서왕모를 키웠고, 복희가 돌아간 뒤에도 서왕모는 만다린의 성지가 되었다.



성지가 되어 만다린들에게서 보호를 받게 된 서왕궁은 왕이 되기 위한 만다린은 필수로 거쳐야 하는 곳이 되었다. 서왕모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희가 아사달로 귀환하면서 서왕궁에 진을 설치했다. 아느의 진을 본 따서 진을 만들었다. 卍(만) 이라고 하는 진을 만드는 데, 그냥 보면 서왕궁이 안 보였다. 서왕궁에 가려면 특별한 절차를 밟아야 만 했다. 진이 설치되면서 만다린들도 서왕모에 갈 수 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왕이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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