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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임 Jan 18. 2022

BC 2300, 단군 선출한 고조선 신선들의 회의테이블

한민족의 시작

한편 단군은 후임이 정해지면 산신령이 되셨다. 정확힌 다시 산신령이 되신 거다.     




단군은 기본적으로 현자들 중에서 선출되었다. 단군은 사회적 권력을 갖는 자리이기에 세속에서 탈피한 산신령들은 꺼려하는 자리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 있어 지도자가 될 존재는 단 3부류 였고, 그 중에서 지도자를 맡을 사람은 현자들 뿐이였다.     




아느에선 여신 기를 중심으로 현자인 사흐들이 계셨고, 물질을 다스리는 마그들이 계셨다. 여신 기는 그날 이후 다시 나타나지 않으셨고, 지금도 그렇지만 과학에 매진하는 마그들은 성향상 어딘가에 박혀 있는 존재들이었다. 절대 지도자로 나설 분들이 아니었다. 결국 여신이 사라진 시대 사흐들이 나서야 했다. 그 전통은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예외도 있지만 우리나라에 왜 이공계 출신 대통령이 없는가 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제정일치인 고조선에서 단군은 10년마다 아사달에서 제천행사를 치러야 했고, 또 평소에는 왕검성을 지켜야 했다. 정치, 군사, 종교의 일인자였기에 결코 심신이 평온한 자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왕검성 북쪽은 언제나 석유 화염으로 청동기를 생산하느라 매연이 가득한 공업지대였다.      




깨끗한 산 속에서 수련을 하시는 현자들은 매연을 싫어하셨다. 매연이 끊이지 않는 공업지대는 마그와 마기들이 지키셨다. 마그는 5, 마기는 4.5이다. 마기는 여신 기의 도움을 받아야 완전한 기술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로 여신의 도움 없이도 기술을 실현 할 때에 마그가 되었다.    



 

거기에 반해 신선은 6인데 랑은 4.6이라 단정할 순 없었다. 랑과 신선은 공업지대에 꺼려했다. 이에 고조선에서 마그와 마기는 왕검성과 왕험성 사이 공업지대에 많이들 모여 있었지만 사흐들과 랑들은 라오닝반도, 아사달, 만주, 산동반도, 한반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반면 여신이 되고자 했던 여인들은 린이라 불렀으며 아느에서의 린과 아느 밖에서의 린은 그 수준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특히 부여에서의 린은 그냥 무녀라 할 수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무녀를 키우지 못했기에 부여의 무녀를 모셔왔다.     




하지만 신선이라 해도 산 속 생활이 만만하진 않았다. 여러 가지 도구들이 필요했다. 신선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는 바로 침이다. 신선들이 쓰는 침은 탄성이 있어 휘어짐은 있어도 부러지진 않았고, 길이는 다양했다. 짧은 것도 있었고 지팡이 만큼 긴 것도 있었다. 우리가 아는 산신령의 지팡이가 바로 이것이었고, 해리포터에서 들고 다니는 마술지팡이가 바로 이것이다. 해리포터는 켈트족의 신화에 기반한다.     




랑의 수준을 너머 진짜 사흐가 되었다면 나무던 바위던 침을 놓을 수 있어야 했다. 바위에도 결이 있고, 그 결을 직선화 시킬 수 있어야 사흐라 부를 수 있는 거다. 사흐들은 중간입자(암흑에너지)를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뭐 지식 조금 있다고 사흐가 되는게 절대 아니다. 자연의 결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생명에 대해 결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산신령의 도구는 기다란 금속바늘이었다. 굵기와 길이는 신령마다 달랐다. 이는 휘어지는 것으로 물질의 결을 찾아 그 결에 맞추어 바늘을 찌르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랑에서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바위에도 결이 있음을 파악하고 바늘을 찔러 넣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결을 따라 바늘을 찌르는 것은 그나마 이해 할 수 있지만 바위에 결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결이 일직선은 아니지 않은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신령 소리를 들으려면 바위 내부의 결을 조절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신령들은 물에도 결이 있음을 알았다. 이에 물을 건널 때도 그 결을 보고 건넜으며 바람에 있는 결을 보고 제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 그 바늘은 지팡이의 형태였다.               



마한에서 17살 정도의 사내들의 죽음이 꽤나 자주 있었다. 마한 평원을 동에서 서로 흐르는 임진강은 깊은 협곡을 이뤘다. 협곡은 깊이도 깊고 그 너비도 꽤나 넓어서 도구 없이는 일반인이 넘을 순 없었다. 이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아 줄 수 있었던 바이다. 비록 거대한 늑대는 뛰어 넘곤 했지만. 그런데 그 협곡의 절벽 중간에 귀한 꽃이 피었다. 그리고 이 꽃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하는 징표가 되었던 것이다. 바람의 결을 타고 꽃을 따곤 했으나 피 끓는 청춘들에게 실수가 없을 리 없었다.       



   

산속 생활은 신선들에게도 쉽지 않았다. 이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금속바늘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맞춤형 금속바늘을 주문하려면 직접 마그를 만나야 했다. 이에 꺼려지는 공업지대를 신선들은 꼭 찾아야 만 했다.          




사흐들은 가끔씩 모여서 회의를 했다. 회의 안건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차기 단군의 계승자 선정 또한 중요한 안건이었다. 보통은 현재 단군의 아들에게 계승되었다. 그나마 자식들이 아버지의 업무를 많이 봐왔고 자연스레 교육과 훈련이 되었을 터이다. 그리고 사흐의 아들로서 사흐가 될 가능성이 높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속세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가진 산신령이 단군을 맡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단군의 업무에서 벗어난 단군은 자신의 지팡이를 들고 산으로 훌훌 떠나버리는 것이다.        



  

산신령들의 회의는 운치가 있었다. 커다란 바위를 회의 테이블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고조선 유적 중에 큰 돌판이 있다. 별 수천 개가 그려진 돌판이며, 여러 번 발견되었다. 고인돌과 다른 점은 주변에 의자가 있냐 없냐의 차이 뿐이다. 테이블 주변에 돌이 7개, 10개, 12개 정도가 있다.      



          

이후 사람들은 그 돌의자가 북두칠성이나 십이지신을 상징한다 라 가설을 세우곤 하는데, 그냥 그날 회의에 참가한 사흐의 숫자일 뿐이다. 관련 논문을 보다보면 의자의 숫자에 대한 것도 있는데, 꿈보다 해몽이다가 여기에 맞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사흐의 숫자가 겨우 십 여명 남짓인가? 아니다. 지역 대표 사흐의 숫자이다. 만약 의자 7개가 있다면 그해 회의에 참가한 사흐의 숫자가 7명이란 의미이며, 그들은 각각 특정 지역의 대표 사흐란 말이다. 그리고 돌판에 새겨진 별은 회의가 있었던 날의 밤 하늘에 뜬 별자리일 뿐이다. 새기는 와중 별동별이 떨어지면 그것도 새겼고, 변동성도 특별하게 새겨 넣었을 따름이다. 순식간에 돌의자와 돌테이블을 만들어낸 그들 입장에선 떨어지고 있는 별똥별 역시 충분히 담아낼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고인돌의 윗돌인줄 알았던 돌테이블도 있을 것이다. 고인돌과의 차이점은 주변에 돌의자가 있느냐 여부다. 고인돌 윗돌에도 별자리는 새겨졌기 때문이다. 별자리를 분석한다면 회의 일자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마그에게 있어 돌테이블 만들고 돌의자 만들고 또 별자리를 새기는 것은 그냥 잠깐 만지면 되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이번 회의 참가자가 7명인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니 2명이 더 왔다. 지금의 우리는 한쪽에 있는 의자 2개를 더 가져오면 된다. 딱히 일이라고 할 것 까진 아니다. 마찬가지다. 당시에도 2개 돌의자 만드는 건 주변에 있는 바위 중 적당한 것 찾아서 뚝딱 거리면 되는 정도다.        



       

뿐만 아니라 산신령들의 회의에서 앉은 키 차이 방지는 중요한 배려였다. 불필요한 시선 격차는 눈높이 불평등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돌의자 높이는 제각각이었다. 참석자 각각의 앉은키에 맞추어 돌의자 높이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다툼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현자들의 대화라도 각각의 지역을 대표한 이들이기에 무리 간 불협화음이 없을리 없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산신령들 간의 논쟁이라, 정말 흥미로운 상상일 터이다.     




당시 테이블 크기는 직경이 12~15m 정도 였다. 산신령이 앉으면 그 뒤에 십여명의 수행원들이 포진할 공간이 요구되었다.                         




한편 사흐들께서 산에 올라간 이유는 당연히 수련을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아느가 해발 5000m 이상인 곳이었다는 이유에 기반 하는 데, 우선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많은 중간입자를 만든다. 정신능력이 뛰어나면 날수록 강력한 중간입자를 만드는데, 아느에서 만년 간 어마어마한 중간입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중간입자를 불러오려면 공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사람이 많으면 공명이 안 된다. 산 속에 혼자 있을 때 더욱 수월하게 공명이 되는 것이다. 공명이 되면 과거 아느 시대의 사람들이 만든 중간입자의 파편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스토리는 아니지만 마치 스냅사진처럼 장명을 읽을 수 있게 되고, 비록 짧은 사진이지만 상당히 많은 텍스트 지식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아느 시대에서만 가능했던 어떤 지식을 얻게 된다. 바로 이게 새로운 창조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추후 설명하겠지만, 이는 초능력이라 표현할 수 있다. 아느에선 입으로 하는 대화보단 텔레파시로 영상을 전송하는 대화가 주를 이루었던 점을 주지하기 바란다.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여행을 하던 한 사흐가 숙박지에 들어갔다. 그는 수십년간의 명상과 수련과 훈련을 거친 사흐다. 그날 밤 사흐의 머릿속에 며칠 전 이 방에 누웠던 사람의 기억이 읽힌다. 아 이 사람은 도자기에 심취 했구만, 아 이 사람은 이집트와의 무역 계약을 신경쓰고 있구만. 아 이 사람은 마한에서 출장 온 사람 이구만. 물론 며칠 지났기에 이미 그 사람에겐 잊혀진 기억일 수 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사흐는 동영상처럼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느에서 어린 릴들은 이런 걸로 장난도 많이 쳤다. 길 가다 예쁜 여성을 보면 졸졸 따라가면서 그녀의 기억 파편을 읽는 거다. 아. 이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고민을 하고 또 이런 문제가 있구나. 그러고선 떡 나타나서 그 고민 제가 해결해 드릴께요. 그녀 입장에선 자신의 아픈 곳을 콕콕 짚어주니 그 대화가 얼마나 재미있었겠나.     




하지만 그 비법이 노출되지는 않았다.     

율법 중에서 침묵의 율법이 가장 강력한 율법이었기 때문이다.


4.5가 되려면 4.5의 율법을 선언했어야 했고,

4.6이 되려면 4.6의 율법을 선언했어야 했다.

4.7이 되려면 4.7의 율법을 선언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침묵의 율법은 황금률에 새기는 것이다.     




자연율보다 더 강력한 게 활금률인데, 황금률을 어길 경우 그냥 지옥행 확정이다.

윤회가 끊어지는 꼴이다. 이를 못 견디면 자살하게 되는데, 자살하면 영혼이 쪼개어지는 것이다. 쪼개어진 영혼은 그 다음 생을 기약하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15, 16세에 4.5, 4.6, 4.7이 정해진다. 이는 현재의 박사과정 입학과 비슷한데 박사과정 들어간다고 박사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지금도 4~6년간의 공부가 있어야만 박사를 받는 건데, 박사 학위 받았다고 완전한 박사라 하기도 힘들다. 4.5, 4.6, 4.7들은 자질을 인정 받은 상태로 마그나 사흐로 인정받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기에 아직 영혼의 성숙이 덜 되었기에 침묵의 율법이 필요한 터이다.   



       

한편 단군을 맡는 기간은 제각각이다. 비록 이미 허무의 벽을 넘어선 사흐라 할 지라도 단군의 역할을 맡은 후 세속적인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허무의 벽을 만날 수 있다. 외부자아에서 허무의 벽을 넘어야 근원적자아로 갈 수 있다. 사흐라면 허무의 벽은 이미 예전에 넘었었다. 그런데 단군을 하면서 다시 외부적 자아의 삶을 사는 것이다. 허무의 벽 밖에서 살고 잇는 것이다. 그렇게 단군 하다보면 어느 순간 다시 허무의 벽으로 가는 길고 가물가물하고 그러다 보면 허무의 벽 안에 갖히는 경우가 있다.      




아 덧없다. 힘 딸린다. 라 할 때가 있다.

이 때가 은퇴할 때이다.      



         

왕검성 자리 정할 때 논쟁이 있었다. 미래에 왕검성이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근데 이를 반대한 사람들이 그 주장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언제 가라 앉습니까?”

“이천년 뒤에 가라앉네.”     



 

왕검성은 BC 2200년을 준비하고자 만들었던 것이니, 겨우 130년 정도만 활용하면 된다.  



    

“그럼 2000년 정도 뒤에 수몰된다 해도 큰 문제 없겠습니다. 130년 뒤, 여신께서 부활하시면 다시 아느로 돌아갈 꺼니깐 상관없지요.”     


 

“그럼 알아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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