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인들, 아즈텍인들이 유럽 사람들한테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쟁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그들의 전쟁 방식은 돌로 상대방의 뒤통수를 때려서 기절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페인군들이 철갑옷을 입고 일렬횡대로 들어오니 때려야 할 뒤통수가 없는 것이었다. 스페인군 입장에선 방어도 하지 않은 채 돌멩이 들고 달려드니 창으로 치르면 그만이었다. 내 앞만 처리하면 되었다. 옆에선 동료가 창 찌르고 있었으니. 400명도 안 되는 병사가 10만 명을 죽였던 것이다. 이만하면 죽이다 지쳤으리라.
웃기는 건 스페인은 잔혹하고 잉카 아즈텍은 선량하다라 판단하면 안 된다. 아주 큰 실수를 범하는 거다. 왜냐면 잉카는 상대 병사를 산 채로 잡아서 그 심장을 제물로 바치는 게 전쟁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존중 같은 건 개뿔이다. 물론 잉카의 나라에 무단으로 침범한 스페인에게 근본 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근데 웃기는 건 앞사람이 그렇게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뒷사람은 계속 같은 짓을 한 거다. 잉카와 아크텍은 죽음을 찰나의 고통이라고 본다. 황제의 명을 안 따르는 것은 영원의 고통이라고 보고 있어. 고통 중 찰나와 영원을 선택한다면? 당연히 찰나의 고통을 선택하는 거지.
이들은 분명 아느의 지식을 전해 받은 자들인데 왜 이런 쓰레기 논리가 만들어졌을까. 잉카와 아즈텍이 숭배하는 신들은 자신들이 죽여버린 아느인이었다. 그 아느인들을 뭐라고 인식했기에 자신들이 죽어서 찰나의 고통을 넘어서면 아느인들이 사는 세상으로 다가간다라 생각했을까
살아남은 소수의 아느인들이 보복하기 위해 이런 논리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쪽 언어로는 케찰코아트라고 하는데, 아느인들을 케찰이라고 하고 그들이 돌아올 것이다를 코아틀이라고 한다. 초기의 아느인들이 도착해서 거기의 원주민을 개화시키고 거대한 석조 문화를 만들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문명이 만들어졌고 굉장히 풍요했다. 당시 아마존은 열대우림지역이 아니었다. 건기와 우기가 있는 초지였다. 그리고 아마존보다 남쪽에 강이 있었는데 거기가 열대우림지역이었다. 이때가 기원전 이삼천 년대이다. 최초 도시가 나타난 게 기원전 2130년대다. 고조선과 비슷한 시대다. 그곳은 그냥 대피지였다.
혹시나 게브가 다시 날아온다면 우리 여기 있어요 라 보일 수 있도록 수백 킬로미터 규모로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다. 그 도시의 후예들이 나스카 그림을 그린 거다. 나스카는 기원후에 그린 것이다.
도시는 언덕 위에 지었다. 우기가 되면 주변이 물에 잠기고 동물들이 언덕 위로 올라왔다. 그럼 사람들과 동물들이 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니깐 굳이 가축화가 필요 없었다. 일 년마다 가축이 공급되니 굳이 힘들게 키울 필요가 없었다.
석조 문화에다 풍요로운 먹거리가 문명을 발달시켰다. 지금의 아마존 유역에서 멕시코까지 그렇게 도시가 만들어지니 수많은 아메리카인들이 모여들었다. 모여든 아메리카인들을 아느인이 교육하고 배치하면서 거대한 문명이 만들어진 거다.
그 당시에 만들어진 아느인들의 집들은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보통 피라미드는 구조는 거대하지만 방은 겨우 한 개다. 하지만 잉카의 집들은 멀티플렉스 아파트처럼 방이 많았다. 넓은 건물 같으면 건물 하나가 2 평방킬로미터 정도의 너비를 가졌다. 아느의 과학으로 거대한 하중을 해결했던 거다.
그렇게 남미의 사람들을 문명화시켰다. 인간의 본성이 바뀔 거라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잉카인들은 생각했다. 신이라 해봐야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네. 먹는 것 자는 것 비슷하잖아. 당시 잉카인은 폴리네시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잉카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당신들에게 선물을 줄게. 그게 당신들의 몸이다. 대부분의 아느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 거다. 동시다발적이었기에 아느인들 대부분이 죽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재앙이 발생했다. 아마존 지역이 열대 우림으로 바뀌었다. 기후가 바뀌니 식물들이 엄청 발달하게 되고, 질병 또한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지진과 화산이 출몰했고 거대한 콤플렉스가 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제야 힘 있는 권력자들은 이게 아닌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느인들이 있을 때도 지진은 있었으나 합리적인 대응을 했기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어느 누구도 해석해 주지 않았다. 자연이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아느인들의 교육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무지한 사람들에게 공포는 엄청난 위협이 되었다.
과학이 사라진 곳에 종교가 나타났다. 그 종교는 너희가 신들을 죽였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한다. 신들은 케찰이라고 하고 신들이 돌아오는 것을 코아트라고 하는데 신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너희는 영원한 고통에 빠지게 될 것이다 라 했다. 케찰코아트가 완성되려면 너희의 심장을 바쳐서 그 피가 충분해져야 한다. 신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바치는 심장이 부족해서이다.
그런데 만약에 너희 심장을 직접 바쳐라라고 한다면 반발이 나왔겠지만 너희에게 대적하는 부족의 심장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대립되는 종족을 죽이면 케찰코아트도 완성하고 동시에 적대자들을 없애니 일석이조의 상황이었다. 잉카 사람들 전체로는 국력 감소이지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심보는 강력했다.
잉카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농업체계나 건축 체계는 기술이었다. 한번 배우면 계속 써먹을 수 있었기에 인구는 계속 늘어났다. 웬만큼 죽여도 인구가 계속 늘었던 것이다. 한 때 유라시아 전체 인구와 아메리카 인구의 비가 2대 1이나 되었다. 유라시아 전체 인구가 5억 명 정도였고 아메리카 전체 인구는 2억 5천 정도 되었으니깐. 이때가 스페인이 찾아왔을 때의 수준이다. 비록 질병이 대부분의 인구를 죽였으나 스페인 군인이 죽인 수도 어마어마하다. 아이티 섬에 처음 유럽인이 왔을 때 인구가 500만 명 정도 살았는데 십몇 년 지나 다시 갔더니 2만 명 밖에 살아남지 않았다고 한다.
몇천 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극단적인 종교 지도자들도 생기기도 했다. 이들은 스페인 병사들을 보고 신들이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신들은 제대로 된 피를 원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도 이게 신들의 뜻이다라고 했다. 저항을 포기한 거다. 일반 백성들 입장에서는 논리적으로 합당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