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맘 단톡방: 토받이 니트 vs 샤넬 스니커즈

#6 포르셰 타고 남대문 가기, 육아가 데려가 준 새로운 세계

by 하니맘
서로 다른 아비투스를 가진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임신 5개월 차, 우리 가족은 여의도로 이사했다. 녹물이 나오고 종종 온수도 미덥지 않게 나오는 36년 차 아파트에서 신생아를 키우는 건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아기방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남편 직장과 가깝고 최근 배관 공사를 완료했다는 여의도의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낯선 동네에서 아기를 낳았다. 신생아 육아는 생각보다 꽤나 외로운 일이었다. 하루 종일 말 안 통하는 아이와 씨름하다 보면 ‘성인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절로 생겼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피곤한 얼굴,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유모차를 미는 동네 엄마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며, 친구가 되고 싶다는 야망도 가져봤지만 인사를 나누는 사이 이상으로 발전하긴 쉽지 않았다.


결국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의도맘’, ‘24년생’, ‘여의도 육아’… 그리고 드디어 ‘여의도 24년생 아기방’을 발견했다.


2월, 첫 정모 장소는 여의도 더현대 안 이태리 레스토랑이었다. 하니는 아직 자주 토하던 시기였다. 디럭스 유모차는 너무 무겁고, 이중주차가 일상인 주차장 사정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토받이’ 용으로 산 니트를 입고, 아기띠를 하고 패딩으로 하니를 덮어 걸어갔다. 백화점에서 유모차를 빌릴 계획이었다.


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씨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유모차를 빌리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내가 상상한 ‘후줄근 산책맘’이 아니었다. 완벽한 화장에 모피 조끼, 까르띠에 팔찌, 명품백, 그리고 샤넬 스니커즈까지. 나의 토받이 니트, 질끈 묶은 머리, 땀내 섞인 숨소리가 민망했다.

대화 주제도 낯설었다. 유명 호텔의 돌잔치 패키지 이야기, 시터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간 이야기, 고급 조리원 경험담… 그제야 다수의 엄마가 아이 없이 올 수 있는 이유를 이해했다. 그들은 ‘시터가 있는 세계’에 살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주눅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나름대로 큰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내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왔나?’ 싶었다. 그야말로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의 충돌이었다. 그들의 일상에서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이,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하고 싶은 게 많았으면서도 겁이 나서 도망치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만큼은 내 안의 겁쟁이를 이기고 싶었다. 혹시 모를 소중한 인연을 겁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인연은 이어졌다. 단톡방을 통해 가정방문수업과 장난감 구독 서비스, 요즘 인기 있는 유아복 브랜드를 알게 됐다. 아기 머리를 잘 자르는 미용실, 소아과 주차 팁, 분위기 좋은 동네 카페 정보는 덤이었다. 하니가 어린이집에 비교적 빨리 입소할 수 있었던 것도, 결원 소식을 알려준 단톡방 멤버 덕분이었다.


크고 작은 정모도 참여했다. 유모차를 끌고 여의도 직장인들 사이를 가로질러 점심을 먹었고, 국회 어린이박물관의 치열한 예약 경쟁도 뚫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저렴한 키즈카페와 강좌도 체험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가 아프면 전전긍긍하고, 기상천외한 애교에 녹아내리고, 훌쩍 커버린 모습에 울컥했다. 아기가 잠들면 맥주 한 잔 하고 싶어 했고, 남편의 무심한 한 마디에 서운해했다. 작아진 아기 옷과 신발, 안 쓰는 용품을 대가 없이 나누고, 차 없이 온 나를 집까지 태워주는 다정함도 있었다. 나도 모르던 나와 하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주기도 했다.


나는 출산 전부터 남다른 걱정을 했다. ‘엄마들 커뮤니티에 적응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정보 싸움, 보이지 않는 신경전… 출산도 무서웠지만 ‘엄마들의 세계’도 두려웠다.


그러나 화려해 보였던 여의도맘들도 결국 나와 같은 존재였다. 부자이기 전에 엄마였고, 엄마이기 전에 그저 사람이었다.


지난주, 나는 한 엄마가 운전하는 포르셰를 타고 남대문 시장에 갔다. 호텔 앞에 발레파킹을 하고 삼겹살과 무알콜 맥주를 먹었다. 아동복 상가를 돌며 흥정 끝에 아기 옷을 구매하고, 호텔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신 뒤 다시 포르셰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새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즐거웠다. 다르다는 이유로 서둘러 거리를 두지 않았기에 가능한 경험이었다.

나는 여전히 시터를 쓰지 않는다. 내가 복직을 하면 하니는 연장반이 없는 우리 어린이집에서 가장 빨리 오고 가장 늦게 가는 아이가 된다. 여전히 다른 아비투스를 가진 우리가 친구일까? 우리 사이를 ‘우정’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에서 잠시 마주 선 우리가, 함께 웃고 떠들고 호의와 위로를 주고받았다는 것. 그 사실만은 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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