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하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엄마 마음 성장학교>였다. 무급휴직을 신청할 때 집 안팎에서 지친 내 마음을 쉬게 하고픈 이유가 있었지만,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으므로, 두 가지 목적을 채우기에 매우 적절한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마을버스와 지하철, 다시 경의선으로 옮겨 타며 일주일에 한 번 신촌으로 향하면서 힘든지를 몰랐다. 순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기쁨으로 충만했으니까. 결혼을 하고 워킹맘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저 좋았다.
동화책과 연계된 수업을 통해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내 안에 숨겨진 속마음을 만나는 일은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고 많이 아프기도 했다. 김은미 선생님이 그때 해 주신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특히 '집에서는 온전히 엄마로 존재하라'라고 한 말씀이 내게는 조금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많은 교사들이 이 수업을 찾는다고 하시며, 집에서도 교사로서의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셨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집에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규칙과 예의를 지키도록 강조하면서 엄격한 잣대로 아이들을 재단하기 바빴다는 깨달음이 찾아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강물처럼 흘렀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던 첫 해, 아이는 과목마다 다른 선생님들이 들어오시는 것을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영어 선생님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연세가 많으신데 목소리가 작아 알아듣기가 힘들고 수업도 너무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내용이었다. 난 그때 버럭 화를 내어 버렸다. 뭐라고 했던가, 엄마도 언젠가는 늙는다고 했던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아이의 힘든 마음보다는 그 교사에게 더 공감했고 그 입장을 대변하기에 급급했다.
왜 그랬을까? 그저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텐데. 난 아이 앞에서 엄마이기보다 교사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왔다. 모두가 나를 져버려도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힘들 때 비빌 언덕이 엄마인데, 난 그러지 못했다. 그 순간에서 한걸음 물러서고야 보이는 진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인 내가 반성하고 공부하며 성장하는 순간들이 더 많다.
중2가 되면서 아이는 자꾸 내 시선을 피하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핸드폰과 피시방이 아이의 참새방앗간이 되었다. 자신의 느낌을 솔직히 털어놓으면 이해해주기 보다는, 더 긴 설교와 강압적인 짜증으로 상대하기만 했으니 오죽했을까. 휴직을 하고 책모임, 글쓰기 워크숍 등에 참여하면서 나 스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빠져 지내다보니 아이들에게도 훨씬 너그러워졌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고 반겨주었다. 아이의 표정이 천천히 밝아지고 가끔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아이가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치유를 받았다. 엄마의 작은 표정 변화에 아이들도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진아, 엄마가 책 읽고 모임 하느라 바빠서, 그전처럼 잘 못 챙겨주네. 넌 어때?"
"난 보기 좋은데? 엄마가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하는 모습."
늦지 않았다. 엄격하게 아이를 통제하며 마음대로 컨트롤하려고 했던, 나 같은 이들이 있다면, 자신의 모습을 지금이라도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그저, 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 주면 좋겠다. 지난 나의 잘못들을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다면 완벽하다. 별개의 인격체로 아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물론, 나도 아직 갈길이 멀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