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은주샘, 오늘 오후에 강당에서 진로 강연 있는 거 아시죠?”
“아, 네. 부장님.”
“5반 멀티가 잘 안 돼서 5반이랑 샘 네 반이 내려가기로 했어요. 인솔 좀 부탁해요.”
이건 부탁인지, 통보인지, 은주는 혼자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학교에서 예산을 많이 들여서 초대한 강연인 만큼, 아이들이 잘 듣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 부탁한다는 부장의 긴 잔소리가 이어졌지만,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섰다. 아침부터 계속된 복통으로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은주가 집에서 먼저 나와야 해서 아침이 더 바빠졌다. 학교에 늦을까 봐 훈이를 유치원 앞에 내팽개치듯 떨어뜨리고 달려온 길이었다. 진이는 학교에 잘 갔을까?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은주는 교실로 가서 아이들을 소강당으로 인솔했다. 반별, 번호별로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조용히 강의에 집중하도록 수시로 주의 주면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은주의 눈앞이 핑글 돌았다. 왼쪽 아랫배가 쿡쿡 쑤시듯이 아프더니, 이제는 식은땀까지 났다. 어쩌지? 강연 중에 나갈 수도 없고. 배가 아픈 건지 옆구리가 아픈 건지 분간도 되지 않는다. 또 왜 이러는 걸까? 이놈의 저질 체력은 지긋지긋하다. 지난해 가을에는 신우신염에 걸려 결국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 그때도 비슷한 위치의 배가 아팠던 것 같기도 한데, 아니지, 그때는 열이 많이 나서 몸이 떨렸었지. 아직 그 정도로 열이 나는 것 같지는 않고, 배를 찌르는 듯한 통증은 더 심하다. 참다못해 은주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가 많이 아프세요?”
의사가 은주의 배를 꾹꾹 눌러보며 묻는다.
“네, 너무 아파요. 왜 그런 걸까요?”
일단 가까운 병원의 신장내과를 찾은 은주는 불안한 마음으로 의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음, 소변 검사 결과는 괜찮거든요. 아픈 위치로 볼 때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산부인과요?”
생각지도 못한 진단에 맥이 풀린다. 둘째를 낳은 이후로 산부인과에는 발길을 하지 않았다. 낯선 의사 앞에 속옷을 벗고 다리를 벌려 진료를 받는 일이 끔찍이도 싫었으니까. 두 번의 출산 끝에 이제 산부인과는 다시 발걸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준비되셨나요? 자, 힘 빼시고 심호흡하세요.”
은주는 아이를 낳으러 온 것도 아닌데,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되었다. 출산의 고통이 떠올라서일까. 그저 이 낯선 공간과 상황이 두려워서일까. 간신히 진찰을 마쳤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이 영겁처럼 길었다.
“은주 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네”
“지금, 염증 소견이 있고요. 혹이 보여서 검사를 좀 더 해봐야겠어요. 마지막 출산 후에 정기 검진은 계속 받으셨나요?”
“아니요.”
은주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왜 그랬을까? 사는 게 바빴지. 애들 키우랴, 일하랴, 그래도 검진은 받았어야 하는 건데. 아이들이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면서, 은주는 자신에게 가장 무심했던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