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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Oct 19. 2023

닫힌 문을 바라보며

작은 새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수화기를 붙들고 울먹인다.

“야야, 내가 괜한 소리를 해 가지고. 너거 신경 쓰이게 했제. 인자 안 그래야지, 하면서, 맨날 그라네.”

모처럼 딸네 집에 왔다가 한바탕 잔소리 폭격을 쏟아붓고 가신 지 며칠 지나지 않은 터였다. 나는 의아해졌다.

불같이 화내고 매섭게 쏘아보던 엄마는 어디 갔을까?     


어린 나는 아무 데서나 잘 엎어졌다. 한 번은 넘어지면서 앞니를 깨 먹었다. 아프고 부끄럽고 겁이 났다. 엄마는 여자애가 조심성이 없냐고, 머릿속에 딴생각이 많아서 그렇다고, 또 병원 가서 돈 깨지게 생겼다고, 다다다다, 기관총을 쏘아대듯, 나를 몰아붙였다.

     

치과에서 생니를 갈아내고 인공 치아를 끼워 넣었다. 나는 입 안에서 위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울지 않고 참았다. 뭘 잘했다고 울기까지 하냐고, 엄마가 또 버럭 화를 낼까 두려웠다. 그날, 치료를 마치고 나와보니, 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의 급격한 온도 변화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낯설고 혼란스럽다.      


요 며칠, 엄마에게 전화 한번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계속 망설이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일주일에 한 번 규칙적으로 영상통화를 했다.

아이가 “할머니~~” 하고 부르며 방긋 웃기만 해도 엄마는 세상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갈비뼈가 뻐근하게 아파지곤 했다.

나도 엄마를 이토록 환하게 웃게 할 수 있구나.

사랑 가득한 눈빛을 불 수 있구나.

내가 열 달 동안 품어서 세상에 내어놓은 이 아이들을 통해, 비로소 볼 수 있구나, 생각했다.     


이제 아이들은 방문을 꼭 닫고 들어간다.

그러라고 만들어 준 방이다. 아이들이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침해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무리해서 방이 세 개인 집을 구했다. 아이들 방을 하나씩 마련해주고 싶었다. 내가 직접 벽지며, 책장이며, 책상이며, 고심해서 선택하고 꾸며주었던 그 방이, 가장 먼저 나를 밀어낼 수 있음을, 나는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얘들아,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화하자.”

몇 번을 부르면, 한참 뜸을 들이다가, 아이들이 슬렁슬렁 걸어온다. 작은 새처럼 이리저리 폴짝거리며 날아오르던 아이들은, 이제 무겁게, 천천히 내려앉는다. 거실 소파에 털썩, 나도 덩달아 풀썩.

서로 자기 말을 하겠다고 앞다투어 재재거리던 아이들은 어디 갔을까?      


나는 또 열심히 배우가 된다.

“하하, 요새 애들이 다 이래요. 그래도 우리 애들은 착해서, 옆에 와 앉아 있는 거예요.”

과장된 너스레로, 계면쩍은 웃음으로, 영상통화 내내 종종거린다.


엄마가 화를 낼지도 모른다.

애들이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냐며, 좀 잘 챙겨 먹고, 일찍 자고, 공부 열심히 하고, 걱정하는 말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그런 하나 마나 한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말은 못 하고, 숨겨 둔 상처가 덧나서 진물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미소 천사’라고 불렀던 J는 이제 더 이상 웃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 놀다가 다툼이 생기면, 여지없이 나는, 형인 J를 혼냈다.

내 팔에 붙은 말랑한 살을 조물조물 만지며 헤헤 웃던 아인데.

한바탕 훈계를 늘어놓고는 “이제 또 그럴 거야?” 물으면, “아니요.” 대답하고, “잘못했지!” 다그치면, “네에.”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수정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곤 했는데.

“이리 와봐.” 내가 팔 벌리면, 그제야 우와 앙,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품에 쏙 안겨 오곤 했는데.

꺽꺽 서럽게 흐느끼곤 했는데.

눈물과 콧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달래주곤 했는데.     


내 안에 속해 있던 아이는 이제 없다.

그래서 슬픈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조금 외롭기는 한가? 그건 그렇다.      


문이 닫힌다.

닫힌 문을 바라보며, 때가 되었을 뿐이라고, 상처받을 일 아니라고, 중얼거려 본다. 그동안 내가 가둬두었던 작은 세상에서 떠나갈 시간이다. 멀리 날아오를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을 작은 새를 생각한다.      


그나저나, 엄마에게 전화해야 하는데, 이번엔 또 무슨 말로 엄마를 안심시켜야 할까?

내가 아파도, 속상해도, 엄마가 모르게 하려고 늘 애썼던 나처럼, J가 혼자 끙끙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다시 불안이 밀려든다.      


문 앞에 선다.

똑똑, 문을 두드려 볼까, 망설이다가 돌아선다.

새야, 잘 있는 거지? 어린 시절 너희가 나를 웃게 했듯이, 이제 내가 너희를 웃게 해주고 싶어.

언제든, 힘들 땐 엄마에게 기대도 된단다.

엄마는 울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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