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온다. 오늘은 또 뭘 해서 일용할 양식을 만드나, 매일 반복되는 고민을 시작한다. 설거지통 가득, 아침에 바빠서 미처 치우지 못한 잔해들을 서둘러 치우고, 저녁 먹을 준비를 시작한다. 즐겁고 단란한 식탁을 마련해 가족들의 속을 든든하게 하고 싶어, 나는 늘 마음이 바쁘다. 허둥지둥 채소를 다듬고 프라이팬에 고기를 볶아내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다가와 코를 킁킁거린다.
“우와, 엄마, 오늘 메인 메뉴는 뭐야?”
아이의 천진한 물음에, 힘들지만 기꺼이 오르내리던 롤러코스터가 갑자기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 “그게 무슨 말이야?” 급정색한 내 표정에 아이는 조금 놀란 듯, 눈치를 살핀다. “아니, 뭐 맛있는 거 만드나 싶어서…” 말끝을 흐린다. “여기는 식당도 아니고, 엄마는 요리사도 아니야. 매일 특별한 메뉴를 준비할 수도 없겠지만, 그게 당연한 것도 아닌 걸 몰라?” 갑자기 풀이 죽어서는 입을 삐죽거리며 돌아서는 아이를 보니, 아, 내 반응이 과했다 싶어, 미안해진다.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늘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봐왔으니까, 오늘의 메인 요리는 OO이라며 내가 표현하기도 했으니까, 아이에게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텐데, 나는 가끔 울컥할 때가 있다. 엄마의 노력을,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듯한 느낌이 들 때, 특히 식탁을 다 차려놓고 몇 번을 부르는데도 다들 핸드폰에 빠져 꿈쩍하지 않을 때, 내 안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기가 힘들다. 내가 주로 요리를 하는 대신, 다른 가족들이 수저 놓기와 밑반찬 꺼내기, 저녁 먹은 설거지하기 등을 맡아서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그럭저럭 지켜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가끔 억울한 마음이 울컥 치솟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혼 초, 남편은 외식을 내켜하지 않았다. 아무리 단출한 식단이라도 집에서 정성 들여 요리한 음식이 맛있다며, 집밥을 원했다. 덕분에 결혼 전에는 ‘요리’의 ‘요’ 자도 몰랐던 내가, 틈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요리 블로그를 검색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레시피를 달달 외워도 막상 여러 가지 채소를 다듬는 기초적인 과정부터, 갖가지 양념을 배합하는 일까지, 쉽지는 않았다. 생초보 주부의 요리는 늘 뭔가가 부족하거나, 과하기 일쑤였다.
엄마에게 전화로 물어보며 똑같이 된장찌개를 끓여도, 그때그때 달랐다. 아무 맛도 안 나는 밍밍한 맛일 때도,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을 때도, 무가 덜 익어 쓴맛이 날 때도 있었다. 다양한 맛의 변주 앞에, 그는 늘 맛있다며 칭찬으로 일관했다. 뒤로는 슬쩍 소금을 넣거나, 물을 타거나 하면서도. 그 시절 나를 움직인 것은, 그의 칭찬이었을까? 그를 향한 사랑이었을까? 엄마라는 또 하나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었을까?
일하랴, 육아하랴, 늘 지치고 힘든 일상이었지만, 내 손으로 이유식을 만들고, 완성한 요리를 아이들에게 먹이는 기쁨은 특별했다. 조금씩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 최고!’를 외쳐줄 때, 작은 두 손으로 엄지 척을 만들어 보일 때, 피곤이 싹 달아나곤 했다. 아이들은 다시 나를 종종거리게 하고, 들썩이게 하는 힘이었다.
“밥 먹었어?”
“어.”
저녁 늦게 귀가하는 아이의 대답은 귀찮은 듯 짧다. 나는 그만 머쓱해져서 부엌으로 간다. 요즘은 큰아이와 이유 모를 냉전 중이니, 오히려 특별한 메뉴를 준비한다. 사태를 오래 뭉근히 끓여내고 숙주나물이랑 고사리를 데치고, 느타리버섯이랑 같이 조물조물해서 고춧가루 듬뿍 풀어내면 맛있는 육개장이 완성된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함께 모여 땀을 뻘뻘 흘리며 후루룩 쩝쩝 맛있게 먹고 나면, 아이의 닫힌 마음도, 상처받은 내 마음도 조금은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내일 택배 하나 갈 거다.”
아버지의 무뚝뚝한 메시지. 일 년에 한두 번, 아버지는 내게 곰탕을 끓여 보내주신다. 평생 원양어선을 타면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나와 함께한 기억이 많지 않다. 더구나 요리는 거의 엄마가 도맡아 해오셨다. 아버지의 짜파게티를 먹었던 일이 특별하게 남아있을 정도니까. 그랬던 아버지가 요즘은 어쩔 수 없이, 무릎이 약한 엄마를 대신해, 부엌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특히 곰탕은 다른 요리에 비해 무거운 뼈를 씻어 내고, 커다란 들통에 담아 끓이는 과정에 힘이 많이 쓰이기 때문에, 유독 아버지의 손길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아버지는 자식들 몫까지 생각해서 넉넉히 뼈를 산다. 몇 시간 동안 물에 담가 여러 번 뒤적이며 핏물을 빼낸다. 큰 드럼통에 물을 가득 붓고 푹 삶아낸다. 첫 물은 따라내고 다시 새 물을 받아 오랫동안 끓여낸다. 하룻밤 식혀낸 다음, 위로 떠오른 기름 덩어리들을 여러 차례 걷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며칠간 오래오래 끓여낸 곰국을 투명한 봉지에 소분하고, 냉동실에 넣어 얼려둔다. 단단히 잘 얼었겠다 싶으면 꺼내어 하나씩 차곡차곡 아이스박스에 담는다. 테이프로 입구를 꽁꽁 봉한 다음 끈으로 고정까지 하고 나면, 경비실에서 빌려온 수레에 싣고 택배를 부치러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자식들, 손주들 입에 들어갈 거라는 기대에, 힘든 줄도 모르시리라.
가끔 격하게 요리하기 싫은 날, 아버지가 보내주신 곰탕 한 팩을 꺼낸다. 뽀얀 국물의 이 한 그릇을 끓여내기 위해, 또 얼마나 여러 번 허리 굽혀 보살피셨을지. 평소 말없이 무뚝뚝한 아버지를 닮아서, 애정 표현에 서툰 나는 아버지의 정성을 먹을 때마다 눈앞이 흐려진다. 요리는 사랑이다. 내가 하는 사랑만 사랑일 리는 없으니, 오늘은 아버지가 보내주신 사랑으로 배를 채우고, 내일은 전문가들의 요리로 평화와 사랑을 느껴보자. 나도 누군가가 정성껏 마련해 준 사랑을 먹고 싶으니까.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