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걸어온다.
끝없이 푸르른 펼쳐진 바다를 등지고,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섬에서 처음 사람들을 만났던 날, 어색하고 불편한 남자에게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던 여자의 미소. 이어지는 선택의 순간에 망설이는 남자에게 실망스러워하던 여자의 표정. 그런 것들이 남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화면을 가득 채운다. 마침내 결심한 듯 남자는 여자를 향해 나아가고, 여자의 환히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나는 창 넓은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하는 일을 좋아한다. 푸른 숲을 마주한 창도, 아기자기한 정원 뷰도 좋지만,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다른 이들의 삶을 상상하고 관찰하는 재미를 따라올 수는 없다. 외출이 어려워진 한동안은, 집에서 리얼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한창 젊고 생기 넘치는 그들의 설렘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난 과연 저 상황에서, 저들처럼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었을까,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J 씨가 왜 좋아요?”
커플 매칭이 이루어진 남자 출연자를 인터뷰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대답했다.
“밝아요. 밝고 예뻐서 좋아요.”
밝고 예쁜 사람. 충분히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인데도,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짧은 기간 동안, 낯선 공간에서 서로를 탐색하고 짝을 찾는다는 설정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나도 안다. 생글생글 잘 웃고, 명랑하고 쾌활한 사람이 사랑받는 세상. 몰랐던 사실도 아닌데, 새삼 생각이 많아졌다. 커플 매칭에 실패하고, 낙담한 출연자들의 얼굴 위로, 매사에 진지하고 생각이 많아서 자칫 어두워 보이기 쉬운, 다른 이들의 말을 듣는 포지션에 익숙해진 내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리라.
예쁘고 발랄해야, 애교스러워야 사랑받는다던, ‘여자는 모름지기...’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그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참 동안 화장을 하지 않고, 짧은 머리를 유지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나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 만큼, 늘 밝음을 가장하려 애써왔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에게, 친구에게,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어, 웃는 얼굴과 친절한 태도를 장착하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아픈 몸이 되어서야, 밝고 활기참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님을 느낀다.
남편은 내게, 밝은 색의 옷을 입어보라 했다. 아들은 내게, 엄마가 다시 머리를 길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밝고 화사한 옷을 차려입고, 머리카락의 길이가 길어지면,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픈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우고, 원체 말 없고 수줍은 내 성격도 가리면, 나도 밝고 예쁜,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 드물었고, 늘 기운 없이 누워 지냈다. 그러다가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암병원 지하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을 밀었다. 뼈만 남은 얼굴에 민머리인 내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흉했다. 이제 나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라는 파도가 나를 집어삼켰다.
오늘도 무사히 아침을 맞이했구나, 어제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았구나, 불안한 밤들과 안도하는 아침들이, 시소처럼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오늘 유독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그저 날씨 탓일까? 언젠가는 병을 이겨내는 날이 올까? 다시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좋은 생각, 충분한 휴식, 영양가 높은 음식, 적절한 운동, 그런 모든 것들을 균형 있게 생활 속에 들여놓아야 한다.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내 몸을 돌보아야 한다. 끝없이 되뇌며 점검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노란색 티셔츠를 하나 샀다. 원체 짙은 남색 계열의 옷을 즐겨 입었던 나는, 선명한 원색의 옷들이 거의 없었다. 아프지 않은 몸은 일부러 밝은 옷을 입지 않아도, 생기를 가장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둡고 가라앉은 모습으로 보일까, 지레 걱정이 앞섰다. 나를 점령한 병마를 이겨내고, 건강할 때와 다름없이 일상을 잘 영위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항암치료가 일단락되고, 연초록 잎들이 앞다투어 고개를 내미는 봄이 왔다. 밝고 예쁜 것들.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들이 눈부셨다. 나도, 그들처럼 반짝이고 싶었다. 아픈 몸의 나도,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의심이 밀려들 때마다, 더 많이 웃고 더 씩씩해지려고 애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병원에 검진받으러 가는 날. 삐죽삐죽 솟아나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가발로 숨기고, 샛노란 티셔츠에, 눈이 시리도록 파란 치마를 입었다.
매년 내 몸은 심사대에 오른다. 또 한 해를 살아갈 만한지, 질병의 흔적이 다른 장기에 미친 영향은 없는지, 점검받고 돌아오는 길. 버스정류장에서 노란 민들레 한송이를 보았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흙을 꽉 움켜쥔 모습이 새삼 대견했다. 별처럼 반짝이면서, 그러나 아무에게나 쉬이 눈에 띄지 않겠다는 듯. 끊임없이 바람에 흔들리긴 하지만, 결코 쉬이 날아가지는 않겠다는 듯.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밝음이 아닌, 스스로 버텨내는 힘을 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예뻤다.
내 안에는 어둠도, 밝음도 함께임을 받아들이기. 가끔 삐죽 올라오는 시기와 질투 같은 못난 마음도, 아닌 척, 괜찮은 척, 포장하고 싶어 새어 나오던 거짓된 미소도 내 모습의 일부일 뿐임을 인정하기. 다른 이의 시선 속에 나를 가두고 나 자신을 괴롭혀 왔던 모든 날과 이별하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스스로 돌보는 힘을 기르기. 내가 내게 하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