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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16. 2023

나를 가둔 것은 언제나 나였다

엄마라는 타이틀


토요일 저녁, 책방에서 열리는 북토크에 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듣고 싶어 얼른 신청한 자리. 책을 읽으면서 그려봤던 작가님의 모습과 많이 달라서 더 흥미진진하고, 같은 책을 좋아하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온전히 빠져들어, 서로에게 공감하며 안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시간. 마음이 무한정 따스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전부터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저녁을 먹었을까? 모임에 오기 전에 내가 미리 준비해 둔 음식으로 잘 챙겨 먹었겠지? 아이들은 알아서 할 일을 하고 있을까? 나 없다고 마냥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 집안 꼴은 또 엉망진창이겠지? 저녁부터 날이 흐린데 빨래는 걷었을까?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자잘한 걱정들을 막아보려 고개를 흔들어 보지만, 홍수에 둑 터지듯 봇물처럼 쏟아지고 마는 생각들로, 나는 또 몇 해 전 어느 날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여보, J가 연락이 안 되네.”

“응? 전화 안 받아?”

“어, 점심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집에 오지도 않고, 계속 전화해도 안 받아.”

잔뜩 격앙된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그날,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 밖에 나와 있던 참이었다.

“그럼, 독서실에 전화해서 확인해 달라고 해봐.”

일단 알았다고 남편이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좀 전까지 친구들과 반갑고 즐거웠던 마음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웠다. 요즘 한참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들이 독서실에 간다고 나가서는 가끔 이렇게 연락 두절이 되곤 한다고,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는데 다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여보, 역시 독서실에도 없다네. J가 자주 가는 PC방이 어디지? 당신 알아?”

알면? 어쩔 건데? 가서 끌고 나오기라도 할 거야? 험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은 마음을 간신히 내리누르고, 일단 좀 진정하라고, 있다가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사정하다시피 해서 전화를 끊었다.      


첫 아이라서 그랬을까?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엄마도 힘들고, 아이도 엇나갈 수 있다는 친정엄마의 충고를 듣고도, 나는 J의 모든 스케줄을 좌지우지하고,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이끌고 가려고 할 때가 많았다. 결국 내게 거짓말을 하고 딴 데서 방황하다가 내게 들키는 상황이 벌어졌고, 남편은 늘 그런 상황들을 뒤늦게 전해 듣기만 하다가, 그날 제대로 실제상황을 목도하게 된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굳이 내게, 실시간으로 전화해야 했을까? 남편에게 화가 나다가, 이럴 때가 아닌데, 내가 얼른 들어가서 아이를 찾아봐야 하나? 자문하다가, 어쩌면 아이를 그런 상황으로 내몬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닌가, 자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게 될 때까지,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관리한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깊고 깊은 슬픔의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었던 날들.      


J가 아기였을 때, 부산 친정에 맡겼던 기간이 있었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마냥 서툰 엄마였고, 직장에도 다녀야 했고,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몇 개월 동안, 아이에게 미안하고, 부모님께 죄송해서 혼자 눈물 흘리곤 했다. 이후에 J를 다시 데려오고 나서는 곧이어 둘째가 태어났고, 주변에 기댈 곳 없는 맞벌이 부부들이 다 그렇듯이, 매일매일 전쟁 같은 삶이 이어졌다. 그래서 늘 짠하고, 내게는 아픈 손가락 같은 J였는데…….      


그래서였을까? 일 년에 한두 번 친정에 가면 대학 동창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조차도 나는 아이들을 동반하고 약속에 나갔다. 남편이 가끔 아이들 없이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자고 해도 나는 늘 거절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활동을 계획하고, 공원이며, 미술관이며,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늘 최선을 다하는 엄마이고자 애썼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를 옭아맨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누가 그렇게 시킨 사람도 없는데, 어린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 각인된 ‘현모양처’라는 타이틀에 나를 가두고, 그 틀 안에 나를 맞추느라 안달복달하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나만 바라보게 되었고, 나는 결국 지쳐 나가떨어졌다.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상처만 남겼고, 오랜 시간이 지나,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 나 자신에게도 습관처럼 조바심과 불안의 그늘을 남겼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가 늘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지 않아도, 아이에게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주어도,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어찌어찌  북토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혼자 되뇌어 본다. 괜찮다. 때로 슬픔이 나를 찾아와도, 또 다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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