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Aug 16. 2023

두 번째 삶

질병을 건너온 몸으로 살아가기

복도에 서서 멍하니 거리를 내려다본다.

병원 안에서 통창으로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곳, 병원 밖 거리를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곳, 내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사람으로, 숨 쉬고 있다고 느껴지게 하는, 유일한 곳. 그곳에서 오래 밖을 응시한다. 진료 시간에 늦었는지, 종종걸음으로 병원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도 느긋하게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 걱정을 가득 안고 땅만 보며 걷는 사람, 엄마 손을 붙잡고 재잘재잘 노래하듯 수다 떠는 아이들이 보인다. 나는 링거 선을 주렁주렁 매단 채, 창가에 바짝 붙어 서 있다.     


이 복도는 말하자면 통로 같은 곳. 내가 항암치료를 받는 암병원과 어린이병원 사이를 잇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같은 곳. 나를 세상과 이어 주는, 아직은 연결고리가 남아있다고 믿게 해주는,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내가 입원 중인 병실에는 나 말고도 암 환자가 다섯. 그들 모두 아프고, 슬프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라서, 아니, 내가 제일 약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잔 같아서, 나는 병실 특유의 냄새, 아주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릴 때면 어김없이, 이곳으로 도망쳐 온다. 이곳에 서면, 숨을 쉴 수가 있을 것 같아서.     


병원에서의 하루는 고요한 호수 같다. 커튼 너머로 들리는 옆 침상의 흐느낌으로 아침이 시작되고, 병실의 온갖 음식 냄새에 매스꺼움을 견딜 수 없어 오래 서성이던 복도의 서늘함으로 낮이 이어진다. “환자분, 좀 어떠세요?” 간호사들의 조심스러운 목소리, 잠 못 드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오갈 때마다 삐걱대는 문소리, 오래 묵은 병실 냄새 같은 것들로, 밤이 채워진다. 늘 변함없이 고여있는 물결처럼 시간이 흐르지만,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내 몸과 마음을 잠식해 간다.     

“어떡하죠? 바늘 들어갈 틈이 없어요.”

이미 너무 많은 주사 자국으로 거무죽죽해진 내 팔을 살피던 간호사의 난감한 표정. 어쩔 수 없이 내민 손등으로, 바늘이 뚫고 들어온다. 소리 없이 견디는 일에 능숙한 나도 이번에는 비명을 참지 못한다.


창밖으로, 지난밤 내게 고통과 친절을 함께 안기던, 간호사가 병원을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창백한 낯빛에 피곤함이 묻어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구겨진 간호복을 벗어 재치고, 나풀거리는 원피스로 갈아입은 모습이, 또각또각 날아갈 듯 걷는 그 모습이, 살랑이는 봄바람 같다. 팔랑이는 나비 같다. 힘들지만 주어진 일과를 마치고 당당히 퇴근하는 그녀의 발걸음을 지켜보다가, 나는 어느새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      

봄비가 내린다. 오늘도 나는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따뜻한 커피 한잔,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앞에 놓고, 음악 선율에 몸을 맡긴다. 운동을 마치고 카페에 들러 즐기는 여유는 참으로 달콤하다. 세상을 촉촉이 적시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천천히, 기억 속의 병원 복도에서 헤어나는 중이다.      


“여보, 오늘 어디가?”

휴일 아침이면 늦잠을 즐기던 내가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두르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의아한 눈길로 묻는다.

“아, 어제 요가를 못 가서, 토요일 오전수업에라도 가려고.”

“어제 늦게 들어와서 피곤하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지금도 골반이랑 다리랑 욱신거리고, 아파.”

“그런데, 괜찮겠어?”

“그럴수록 가야지, 요가를 해야 풀려.”

순간, 그와 나 사이에 묘한 정적이 흐른다.

“응? 그건 내가 자주 하던 말 같은데?”

“하하, 그러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오다니, 좀 어색하긴 하다. 그치?”

우린 오랜만에, 마주 보고 웃는다.     


나는 몸을 쓰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 어린 시절에도, 친구들이 한참 술래잡기, 고무줄놀이에 빠져 있을 때, 집에 가만히 앉아 혼자 공상에 빠지거나 책 읽기를 좋아했다.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갈수록 몸을 쓰는 일에는 더 젬병이 되어갔다. 학교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던 아이는 자라서 종일 같은 자세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직장을 얻었다. 퇴근 후 소파에 널브러지는 시간이 제일 좋았던 나도, 엄마가 되고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매일 지치고 힘들어하는 내게, 남편은 운동을 좀 하라고,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이 미웠다. 자기는 취미 활동 하느라, 사람들 만나느라 맨날 늦고, 건강을 위해 운동까지 할 시간이 있는지 모르지만, 난 퇴근하고 애들 돌볼 시간도 부족하다고, 잠깐 쉴 시간도 없는데, 내가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냐며, 운동을 해서 힘이 나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체질적으로 운동이 안 맞는 사람도 있는 거라며, 그에게 쏟아 내다보면 서로 감정싸움이 되곤 했던 시절들. 그 시간 속에서, 우린 서로 마주하고 선 두 개의 상처였다. 서로의 생채기가 더 크다며, 더 아프다며, 너는 왜 내 아픔을 먼저 봐주지 않냐며 울부짖는, 어린애였다.      


깊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작은 빛줄기 하나를 찾아 움직이는 본능으로, 병원에서 나는 복도 창에 매달려 그 시간을 이겨내지 않았을까. 병을 앓고 나서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내 몸의 소중함을 처절히 각성했음이다. 몸 쓰는 일을 하찮게 여겼던 내 젊은 날의 어리석음을 반성했고, 몸의 건강이 전제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공원 산책을 시작했고, 아이와 손잡고 푸르른 자연을 느끼며 내 두 발로 걷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요가원에도 등록했다.      


“어깨에 힘을 빼세요.”

요가원에서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 굳은 어깨에 들어간 힘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쉽지 않다. 벌써 꽤 오랜 기간, 매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요가원에 다니고 있다. 이제는 요가를 하고 나면 내 몸의 긴장도가 내려가는 것을 인지할 정도는 되었다. 여기저기 뭉치고 딱딱해진 근육이 풀어져 온몸이 개운해지는 기분, 운동 후의 상쾌함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역시, 비까지 내린 토요일 아침에 부지런 떨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는 내가, 나도 참 신기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구나 한 번 크게 아팠던 몸이, 건강을 지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몸을 소중히, 귀하게 여기는 자세가 필요함을 이제는 안다. 내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은, 다른 누구의 지지와 애정에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내 몸과 마음을 고루 아끼며, 사랑하며 살고 싶다. 창문 밖으로 직접 걸어 나가 비도 맞고, 웅덩이도 밟아보리라, 생각하며 카페를 나서는 길. 어느새 비가 그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