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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Oct 16. 2023

협상

K-며느리가 명절을 맞이하는 태도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이 돌아왔다. 결혼 20년 차, 나는 미리미리 조금씩 장을 봐두었다. 명절 전날에는 나물거리, 국거리를 손질해서 차례상 준비를 하고 가족들 먹을 갈비를 재웠다. 명절 음식의 가짓수를 최소한으로 해서 간소하게 치르기로, 제사 횟수를 줄이기로 합의하고, 그저 이것은 내 몫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데에 꼭 이만큼의 세월이 걸렸다.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매사에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에게 반항하기도 했던 당돌한 손녀였지만, 결혼 후 시댁에서 나의 위치는 그 옛날 엄마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시어른들의 제사상을 차리고, 시어머니를 봉양해야 하는 자리. 해도 해도 티 안 나는 집안 살림과 육아, 거기에 직장 일까지. 엄마는 내가 좀 더 평등하게 살기를 바라 어엿한 직장을 가지기를 소망했지만, 결국 내게는 엄마가 하던 일에 직장 일까지 더해졌을 뿐이었다.     


며칠 전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조금 속상해졌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서 각 양 각색의 삶의 단면들을 들려주는 콘셉트이라 좋아했던 프로였다.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비슷한 상황에 공감하기도 하고, 내가 잘 알지 못했던 낯선 모양의 삶을 접하고 놀라기도 하며 무지개처럼 색 색깔로 빛나는 각자의 삶의 자세를 배우기도 했다. 그동안 웃고 울며 지켜봐 온 프로그램인 만큼, 나의 기대가 높았던 걸까?      


그날은 한 여배우가 출연했다. 그녀의 특수한 가정환경, 유년기의 에피소드, 여배우로의 화려한 이력을 거쳐 작년에 엄마가 된 이야기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말했다.

“어떤 작업을 하면 박수도 받고 그렇잖아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100일을 공을 들여 엄청(?) 키웠는데 너무 당연한 거더라고요. 엄마니까 당연하지, (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 이런 거구나... 엄마의 삶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늘 대중에게 주목받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온 그녀였다. 100일간 아기를 위해 온전히 희생한 시간은 아무도 치하해 주지 않고, 당연한(?) 일로 여겨짐이 충격이었을 법도 하다.

그녀를 지지하는 진행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회가 얼마나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지,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 역할을 떠나 한 아이를 키워내는데 얼마나 큰 희생이 필요한지 등의 이야기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진행자는 자신도 아이를 보면서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는 이야기로 호응했다. 포인트는 그게 아닌데, 안타깝고 실망스러웠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진정 불가능한 일일까? 그저 재미를 위한 예능 프로그램일 뿐인데 나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혼자 푸념해 보아도 입맛이 씁쓸했다.

      

결혼하고 첫 명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부쩍 불러오는 배를 안고 서툰 솜씨로 나물을 무치고, 남편과 마주 앉아 전을 부쳤다. 그래도 행복했다. 다음 날 차례를 모시고 나면 친정 부모님을 뵈러 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고, 음식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남편이 고마웠다. 그날 저녁, 손 위 시누이가 다음날 집에 온다는 연락을 받은 남편이 친정에 내려가는 일을 하루 늦추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첫 명절이니까."라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결혼 후 첫 명절이야."

더구나 시어머니는 함께 살고 있었고, 시누이도 가까이 살아서 얼굴 보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친정은 명절이나 특별히 휴가를 내지 않으면 방문하기 어려운 지방이었다. 시누이가 친정에 오고 싶은 것처럼, 나도 명절날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라고, 그날 내가 완강하게 버텨내고 설득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린 어땠을까?      


그 이후에도 폭풍우는 휘몰아치고, 또 잠잠해지고. 허례허식을 줄여나가자는 내 주장과 일 년에 한두 번 마음을 다하는 일이 무어 그리 힘들어서 매번 그러냐는 남편의 입장은 늘 평행선을 달려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우리끼리 지내는 조촐한 차례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명절을 치르는데 많은 부분이 내 손을 거쳐야 한다. 엄마가 할아버지와 고모들의 등쌀에 힘들어했던 그 시절과는 물론 많은 것이 변했다.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나 분위기가 달라졌기에, 나도 이만큼의 조율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어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불평등한 의무이며, 끊임없는 투쟁으로 얻어내야 할 소중한 권리일 수 있음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협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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