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비애
아이들이 흔들리는 만큼 엄마는 자란다
‘삐삐삐, 삐익’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문 앞으로 걸어가 대기한다. 문이 열린다. 햇살처럼 맑은 얼굴이 나를 향해 웃는다. 엄마아~ 부르면서, 두 팔 벌려 내 목을 끌어안는다. 아이의 심장에 내 심장을 맞대고, 서로의 체온을 느낀다. 문득, 평소보다 몸이 뜨거운 것 같다. 숨소리도 조금 가쁘다. 나는 포옹을 풀어내고 아이를 살핀다.
“왜 이렇게 숨이 차?”
“응, 오늘은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가 있을 테니까, 빨리 오고 싶어서 뛰어왔어.”
약간의 너스레를 더해, 헤헤거리며 웃는 표정이 사랑스러워 죽겠다. 아기 때처럼 물고 빨고, 잔뜩 부비부비를 해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다.
“그랬구나~ 엄마도 너 기다리고 있었어. 간식도 만들었지.”
“우와~ 진짜? 뭔데? 아니야, 내가 맞춰볼게. 음, 이게 무슨 냄새더라?”
아이는 코를 벌렁거리며 주방으로 달려간다.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내게는 어린아이처럼 애교가 넘치는 막둥이에게 새삼, 미안함이 밀려든다.
아이가 어렸을 때, 작은 어항에 금붕어를 키웠다. 물끄러미 어항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문득, 우리도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되물었다.
“으응, 내가 학교 갔다 올 때, 강아지가 있으면 나를 반갑게 맞아줄 수 있잖아. 금붕어도 좋긴 한데, 금붕어는 나한테 달려오지 못하니까. 엄마는 일하러 가야 하고, 형아도 공부하러 가고 없을 때, 나는 좀 쓸쓸하거든.”
집에 돌아왔을 때 반갑게 맞아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예쁘게 할 수가 있을까?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태연히 이야기하는데, 막상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이에게 쓸쓸함을 알게 한 것이, 모두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어린 날의 나도,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뭔가 섭섭했던, 텅 빈 집의 정적이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문을 열었는데, 엄마의 기척이 느껴지면 왠지 마음이 놓였다. 집 안 가득 카스텔라를 굽는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날에는 얼마나 신이 나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 향기로운 추억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고, 반갑게 맞아줄 때의 기쁨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하니, 아이는 오죽할까.
나는 워킹맘이다. 시댁도, 친정도 육아를 도와줄 상황이 되지 않았던 탓에, 이른 아침이면 잠도 덜 깬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던져 놓듯 맡겨놓고 출근하기 바빴다. 퇴근 후에 아이들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침 먹은 설거지가 나를 기다리는, 고단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너무 이른 시기에 단체 생활에 노출되면서 아이들은 번갈아 아팠다. 둘째는 업고, 첫째는 걸려서 병원을 순례해야 했던 시절이, 벌써 전생처럼 아득하다.
일과 살림, 육아를 병행하면서 힘든 순간들이 누군들 없을까. 이 땅에 모든 엄마는 나름의 이유로 힘들고 아프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들이 있어서, 웃고 울며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서 아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나는 이토록 조건 없이 온전한 사랑을 주고, 또 받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일찌감치 철이 든 아이였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먼 나라에 떠나 계신 날이 많았고,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엄마는 늘 고군분투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나는 늘 모범생이어야 했고, 동생까지 잘 돌보는 착하고 듬직한 맏딸 노릇을 해내야 했다. 부모님의 기대로 늘 어깨가 무거웠다.
결혼 후 ‘독박 육아’로 소모되는 나 자신을 느낄 때면, 엄마도 서툴고 힘들었겠구나, 내게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해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나는 엄마처럼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첫째에게는 더 엄격해지고,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는 내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한참 힘든 시기에는 “엄마, 책 읽어줘.” 하며 다가오는 둘째를 첫째에게 보냈다. 아직 한글도 익히기 전인 큰아이한테 동생 책 좀 읽어주라고 시켜놓고, 나는 밀린 집안일을 했다. 한참 뒤, 들여다보면, 큰아이가 그림을 짚어가면서 동생에게 이야기를 읽어주고 있었다. “옛날에, 곰 세 마리가 살았어요. 아이코, 이게 뭐야? 집에 돌아와 보니, 글쎄, 모르는 애가 들어와 있었어요.” 동화책 읽어줄 때의 내 말투를 흉내 내면서, 기억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고맙던지. 아이들이 있어서, 그 시간을 살아냈다.
아이들과 함께 ‘해설이 있는 클래식 공연’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 눈높이의 쉽고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클래식 음악을 접하도록 해주고 싶었고, 예술의 전당에서의 공연 관람은 내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내내 즐겁게 공연을 보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는 어릴 때부터 이런 음악회에 와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어른이 된 오늘에서야 오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작은 아이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진짜? 그럼, 엄마는 오늘 꿈을 이룬 거네?”
“꿈?”
“응, 음악회에 오는 꿈을 이뤘잖아? 축하해.”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바쁜 일상에서 틈을 내어, 오랫동안 내가 원했던 기회를 마련하는 일. 거창한 꿈이 아니어도, 소소한 기쁨을 찾아 실현하는 일이 꿈을 이루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는 언제나 내게 큰 깨달음을 주는, 선물 같은 존재다.
이제는 아이들이 내 키를 뛰어넘었다. 사춘기라는 긴 터널을 통과 중이다. 늘 밝게 웃으며 먼저 손 내밀고 엄마를 안아주던 아이들이, 엄마 말을 들은 척 만 척, 눈도 잘 마주치지 않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래도 아이와 연결된 끈을 놓을 수는 없으니까,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엄마는 영원히 너희들의 편이라고, 언제든 힘들고 지칠 때 쉬어갈 둥지가 되겠다고, 매일 같이 다짐한다. 거센 소나기 뒤에 찬란한 무지개가 뜨듯이, 조금씩 안정감을 되찾을 날이 오리라, 믿어 보려 한다. 조금 더 흔들리면 어떠하랴. 아이들이 흔들리는 만큼, 엄마도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