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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Sep 16. 2023

생일의 악몽

엄마라는 이름으로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하얀 커튼 자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긴 마름모꼴의 햇살이 층층이 계단 모양으로 매달려 함께 흔들린다. 커튼 자락 사이로 파란 하늘이 눈앞에 드러났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아침 시간의 요가원은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머릿속 소란은 점점 커져만 간다.

“양 발목을 무릎 위에 교차시킬게요. 천천히, 몸을 앞으로 숙여 볼게요.”

요가선생님의 말이 내 귓가에 맴돌다가 사라진다. 뒤늦은 메아리처럼 허공을 헤맨다.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생일의 악몽이 온 머릿속을 잠식한다.      


오늘따라 남편은 자꾸 나를 재촉했다. 본인이 오후에 친구랑 약속이 있으니, 운동하러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어린애처럼 보챘다. “오늘 나갔다 오면 피곤해서 내일은 하루 종일 늘어져 있는 거 아냐?” 나는 그에게 가시 박힌 농담을 던진다. 그러자 그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반문한다. “응? 나 내일은 자전거 타러 갈 건데?” 나는 그만, 폭발하고 만다. “설마, 내 생일인 거 잊었어?”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자전거 타고 와서 저녁 먹으러 가면 되잖아?” 남편은 늘 이런 식이었다.      


우리 가족은 기념일이 다가오면 주말에 미리,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 곤 했다. 평일에는 다 같이 시간 맞추기가 어렵기도 하고, 다 함께 식사 겸 나들이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어서다. 특히 누군가의 생일이면, 생일 당사자에게 올해는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맛집을 알아보고 예약하는 일, 케이크 가게를 검색해서 주문하는 일, 모두 내 일이었다. 그냥, 처음에는 내가 그런 일을 좋아해서 그렇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일날조차 내가 그걸 해야 하는 상황이 서운해지기 시작했다. 왜 나는– 엄마는 - 늘 가족을 챙기는 사람이기만 해야 하는 걸까?     


결혼 후 우린 한동안 주말부부로 지냈다. 그동안 나는 첫째를 낳았고, 둘째를 임신한 채로 남편의 직장 근처로 내 근무지를 옮겼다. 남편이 결혼 전부터 살던 아파트에서 시작한 신접살림 중에, 둘째가 태어났다. 아이가 둘이 되자 일과 육아를 혼자 감당하기 힘겨워졌고, 결국 엄마인 내가 육아휴직을 했다. 나고 자란 도시는 멀고, 직장마저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는, 아무도 없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 첫째를 먹이고 씻겨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갓난이 둘째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야기가 통하는 어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집을 벗어나 – 낯설고 새로운 공간으로- 외출하고 싶었다. 내가 다듬고 씻어서 요리한 음식 말고, 남이 차려 준 밥상을 받고 싶었다.      


휴직 기간, 오롯이 ‘독박 육아’를 감당하면서, 수시로 외롭고 서러웠다. 내 마음도 모르고, 남편은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늘어져 쉬고 싶어 했다. 주말에도 약속이 있다며 외출했다. “여보, 어디가?” “미안, 아는 형이 오늘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해서, 얼른 만나서 점심 먹고 돌아올게. 저녁에 당신 생일 축하하자.” 돌아서는 그가 한없이 야속했던 그날, 그날부터 이미 생일의 악몽은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생일날조차 집 안에서 아이들과 대충 끼니를 때우기는 싫었다. 내게는 차가 없었고 - 물론 운전도 할 줄 몰랐으며 – 갓난이를 데리고 외식을 할 만한 장소도 알지 못했다. 사실, 그 지역 지리도 잘 몰랐다. 출, 퇴근길 버스 편과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소아과병원 외에는 남편 없이 외출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늘 그랬듯이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의 손을 잡고 일단 집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도 함께 먹을 만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아파트 단지 안 상가를 기웃거리다가, 지하에서 떡볶이, 김밥, 잔치국수를 파는 분식집을 발견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육수에, 당근, 호박, 양파, 계란 고명까지 알록달록 예쁜, 따뜻하고 풍성한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나는 조금 먹먹했다. 첫째가 기다란 국수 면을 포크로 떠 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양손으로 면을 집어 먹는 모습을 그저 수수방관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는 엄마의 방관이 오히려 작은 모험처럼 즐거워 보였다. 작은 입을 크게 벌리고는 손을 높이 들어 올려 “엄마, 이거 봐.” 하며 길게 늘어뜨려 보이기도 했다. 거센 모래바람이 심장을 할퀴는 것처럼 아팠지만, 나는 그저, 아이와 마주 웃었다. 주말 점심에, 엄마 혼자 아이 둘만 데리고, 아파트 상가에서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있는 내 모습이 얼마나 처량해 보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랬다.      


‘겨울에 태어나 아름다운 당신은~’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들으면 우울해졌던 시절이 있었다. 어째서, 겨울에 태어난 당신만 아름다운가? 나는 여름에 태어나 아름답지 못한가?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운명인가? 스스로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으로 가라앉던 나. 어쩌면 습관적인 내 슬픔을 환히 밝혀줄 줄 알았던, 다정한 사람과의 결혼은, 막상 엄마로서 의무와 쓸모에 집착하느라, 나를 더 깊고 깊은 외로움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나는 왜 이렇게 매번 실망하면서도 또 기대하는 것인지. 나는 내가 가족들의 생일을 축하하고 챙기는 만큼, 똑같이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다른 이들에게 바라는 마음을 비워내고, 차라리 내가 나를 축하하면 되지 않을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 속에서, 나부터 나를 챙기고 사랑하는 연습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내년 생일에는 내가 나에게 멋진 선물과 힐링의 시간을 선사해 보기로, 다짐하는 오늘.


요가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이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핀다.      

“여보, 나 내일 자전거 타러 가지 말까? 나 미역국 끓이려고 소고기 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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