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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10. 2023

슈퍼우먼이 되라고?

돌봄 시스템의 한계

“글쎄, 저한테 아침마다 애 도시락을 싸 보내라는 거예요.”


직장생활을 하는 희연은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학교 돌봄 교실에 맡기고 있다. 최근에 방학이 시작되면서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방학 중에는 급식 운영이 어려우니, 아이들 도시락을 지참시켜 보내라는 내용의.

“돌봄 교실이 왜 있어요? 직장 때문에 바쁜 엄마들이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도록 하는 목적 아닌가요? 아침에 애 깨워서 먹이고 학교 갈 준비 시키랴, 내 출근 준비하랴, 정신없이 바쁜데 도시락까지 싸라니요.”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쩜 이렇게 십여 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을까?

지금은 스무 살이 넘은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도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의 등교 시간이 내 출근 시간보다 늦은 것은 차치하고, 처음 한 달은 학교 적응 기간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등교한 지 한두 시간 만에 하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하늘이 노랬다. 여덟 살 아이가 아침마다 엄마가 준비해 놓은 음식을 챙겨 먹고 등교할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학교에 가는 것만도 장한 일인데, 하교 후 혼자 점심까지 해결해야 하는 상황, 그러고도 부모의 퇴근을 기다리며 오후 내내 혼자여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실제로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어머니, OO이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아서 연락드렸어요.”

“네? 그럴 리가요?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지 제가 얼른 알아볼게요.”

집으로 아무리 전화해도 아이는 받지 않고, 심장이 터질 듯이 답답하고 속상했던 경험. 설마 집에 도둑이 든 것은 아니겠지? 아이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다가 사고가 나지는 않았을까? 별별 상상에 혼자 몸서리를 치며 걱정하고 있는데 ‘띠링’ 아이의 담임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머니, OO이 지금 학교 왔어요.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었다네요. 계속 걱정하실까 봐 문자 드려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던 순간들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직장 동료 중에 선배 엄마인 분들께 의논했더니, 다들 친가나 외가 조부모의 손을 빌리거나 그조차 어려우면 학원에서 학원으로 시간표를 짜서 돌린다고 했다. 그래서 다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육아휴직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시어머님이 오랜 기간 병원에 계셨던 상황이라 집안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휴직을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정도 멀어서 믿고 맡길 대상조차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돌봄 교실에 신청했는데 추첨에서 떨어지기까지 했다. 이제 어쩌나? 다른 선배 맘들처럼 태권도학원, 피아노학원, 미술학원으로 순례시켜야 하나? 걱정만 가득했을 때, 아파트 게시판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초등 1학년 아이들을 가정에서 돌봐준다는 공부방 광고지였다.     


아이가 학교 끝나고 나오면 안심하고 집처럼 쉴 수 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도록 돌봐주겠다는 내용의 전단 앞에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 다 배우는 미술이며, 피아노며 학원을 아예 안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우리 집 사교육비가 두 배로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종일 떠도는 느낌 없이 안정감 있게 쉴 수 있고, 어른이 챙겨주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몇 배나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난다.     


“아니, 왜? 단체 도시락을 주문한다든가, 방법을 찾으면 없진 않았을 텐데?”

내가 되묻자 희연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 말이요. 근데 작년에 설문조사 했을 때 학부모들이 도시락 업체를 믿을 수 없다며 반대했다네요.”

“작년? 올해는 다시 설문 조사했데?”

“아니요. 그게 제가 제일 답답한 부분이에요. 올해 다시 조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건 본인의 실수라며, 죄송하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엄마가 슈퍼우먼이 되라는 건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가슴이 답답해진다. 결국 이번 방학은 어쩔 수 없고, 다음에는 꼭 의견 수렴해서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약속만 받아냈다고 한다.

     

사실 희연과 나는 온라인상에서 함께 책 읽기 모임으로 만난 사이다. 얼마 전에 함께 읽은 책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는 옮아갔다가, 엄마가 먼저 책을 읽으니 아이도 따라서 옆에 와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에는 함께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희연은 또 얼굴을 찌푸린다.

“실은, 아이 수학 공부도 슬슬 걱정이에요. 초등 2학년 문제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제가 풀다가 못 풀기도 한다니까요.”

나도 첫째는 직접 가르쳐 보려고 시도하다가 폭망 한 기억이 있어,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희연의 입에서 예의 그 ‘엄마표’ 이야기가 나온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엄마표 수학을 실천하는 블로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따라 해보려고 하는데, 퇴근하면 이미 지쳐있는데, 아이 저녁 먹이고, 학교 숙제나 공부까지 봐주고 하기가 벅차니, 우리 함께 읽기 책에 속도가 안 나네요.” 한다.

언제 적 ‘엄마표’가 지금도 인지. 하긴 십여 년 전에도 농담 반, 진담 반, 아이의 미래는 ‘엄마의 정보력’에 좌우된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곤 했다. 어쩌면 그대로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진화하고 발전한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그녀를 위로하며, 생각한다. 이제는 좀, 달라지면 좋겠다. 개인의 희생과 노력에, 혹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 돌봄 시스템을, 조금만 개선하면 좋겠다. 엄마도 직장에서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는 집처럼 안정감 있게 쉬고 놀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바꾸어 나간다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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