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아이

착함과 미련함 사이

by 봄날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나무 잔가지처럼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끝없이 뻗어나가는 골목 끝, 단칸방에서 옹알이와 걸음마를 시작했다. 원양어선을 타러 가신 아빠의 부재 속에, 엄마는 혼자 애 닳기도, 혼자 감탄하기도 하며 나를 키웠다고 추억한다. 정작 내게는 남아있지 않은 기억 속 장면들을 이야기로 듣는다. 전학이 잦았던 어린 시절, 나는 늘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으로 어깨가 무거운 아이였다.


결혼 후에는 오래된 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쭉 뻗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고만고만한 아파트 단지들이 줄지어 늘어선 이 도시에서 아이 둘을 키웠다. 매일 이어지는 출퇴근과 동시에 이어지는 육아로 지치는 시간이 반복되었지만, 주말이면 아파트 단지 안 작은 공원에서 아이들과 손잡고 걸을 수 있어 행복했다. 크고 울창한 나무들에서 꽃이 피고 지고, 나뭇잎이 돋아나고 떨어지며 변해가는 풍경을 아이들과 함께 바라보고, 마주 웃을 수 있어 얼마나 좋았는지, 아이들은 기억할까.


어김없이 새해를 맞아, 고향에 부모님을 찾아뵈러 간 길. 아버지는 매년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어집에 가자고 하신다. 노릇하게 잘 구워낸 장어를 작게 잘라 손주들 입속으로 넣어주시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 집게와 가위는 한사코 아버지 앞에 놓여야 한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지만, 잘 익은 놈부터 손주들 앞 접시로 퍼 나르기를 멈추지 않으신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주시는 장어를 사양하지 않고, 부지런히 집어먹는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큰 애가 배탈이 난다. 명치가 답답하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말에, 급히 등을 두드리고 주무르고 진통제를 찾고, 온 집안이 한바탕 소란스러워진다. “아이고, 우짜노.” 소리만 반복하시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느라 허둥대는 밤이 또 어찌어찌 지나간다. “너무 착해 가지고, 계속 먹었는가베. 할아버지가 적당히 줘야지, 계속 주면 우짜노.” 딸네 식구들 보기가 민망했는지 엄마는 아버지에게로 화살을 돌린다.


그런가? 정말 착해서 그런 걸까?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드린다고 혼자 외가댁에 다녀온 아이니까,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장보러 간다고 하면 무거운 짐 들어준다고 따라나서던 아이니까, 착한 녀석인 건 맞다. 그러나 남도 아니고, 할아버지한테 그만 먹겠다는 말도 못 하고 탈이 날 만큼을 그저 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아이를 너무 미련하게 키운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잦은 이사로 친구가 없었던 나. 습관적 외로움을 숨기려고 웃음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지냈던 나. 내 감정을 누르며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해진 나는 그런 내가 싫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이사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절대로 닮지 않기를 바랐던 그 모습이 다시 아이에게서 보이는 것인지. 결국 내가 키운, 나를 닮은 아이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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