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Care of yourself

인생은 길다

by 봄날

작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서 있는 좁은 거리.

자꾸만 몸이 움츠러드는, 연말 같은 새해. 가게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쓸쓸하고, 나는 거리 한가운데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두리번거리는 내게 써니가 다가왔다. “여서 뭐하노? 가자.” 어린 시절 할머니가 옛다 받아라, 하고 던져주는 다디단 곶감처럼, 친구의 툭 던지는 말투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여고 시절부터 둘도 없는 내 단짝인 써니는 그날 나를 사주카페로 데려갔다.


“삼재였네. 인제 거의 끝났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며 나를 돌아보는 써니의 표정을 마주하며, 나는 조금 안도하는 마음이 된다.

“올해까지도 쪼끔 힘들 수 있는데, 뭐 괜찮아. 원래 잘 참잖아?”

잘 참는 성향도 사주에 나온다고? 의아해진 표정의 내게 그분은 또 한 마디를 보탠다.

“이 사람 사주가 원래, 착하고, 착하고, 착해. 가끔 욱! 해서 탈이지.”

그날 써니와 나는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내가 처한 현실 따위는 다 잊을 만큼.


임용고시에서 미끄러지고, 한 사립 고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들어갔다. 남학생으로만 가득한 교실에서 얼굴 붉힐 일도, 도망치듯 뒤돌아 나와 혼자 울 일도 많았지만, 잘 참아냈다. 첫 교직 경험을 실패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 년 만에 그곳을 박차고 나왔다. 정규직 채용을 빌미로 은근히 뒷돈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 노량진 고시원에서 또다시 일 년을 버티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나를 응원하려고, 써니가 마련한 자리였다.


고시원에서의 일 년은 어둡고 무거웠다. 그러나 긴 장마 끝에 햇살이 쨍하듯, 일 년 뒤 합격의 기쁨을 얻었고, 낯선 도시에 발령도 받았다. 가족들과 떨어져 외로웠던 탓인지, 써니의 이른 결혼과 출산을 지켜보며 괜한 조급증을 느낀 탓인지, 이듬해는 결혼도 했다. 통과의례처럼 출산과 육아가 이어졌다. 그 후로 오랫동안, 누구나 그렇듯이, 정신없이 살았다. 좋은 엄마,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둘 다 잘 해내고 싶었다. 그 누구에게도 민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허리, 어깨 등이 자주 아팠다. 정형외과에서 약도 먹고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어 한의원을 찾았다. 한참 맥을 짚어 본 한의사는 내게 화병이 있다고 했다. 가슴에 울화가 가득 차 있으니 자꾸 숨이 가쁘고, 덩달아 소화도 안 되고, 몸 전체 순환까지 막혀있는 거라고. 나만 참으면 모두가 괜찮으리라고 믿었던 날들이, 고스란히 냄 몸 안에 쌓여 병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다. 욱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그럼 어떡하냐고 물었다.


스트레스받지 않기, 잘 먹고 잘 쉬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같은 너무 뻔한 조언들과 함께 쓰디쓴 한약을 처방받아 돌아오는 길. 그때 결심했다. 비싸게 치른 한약을 먹는 동안만이라도, 나를 잘 돌보자.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과 그때의 내 감정을 잘 살피고, 더 이상 참고 또 참아서 화를 쌓이도록 방치하지 말자.


또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간밤에도 허리 통증으로 잠을 설치고 일어나 생각한다.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한 약속은, 잘 지켜내고 있는 걸까? 나에게 묻는다. 대답은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인식하기 전보다는 나아졌으리라. 믿어보기로 한다. 살아보니, 생각보다 인생은 길다.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 매일 연습하면 된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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