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너무 많이 봐서 몇 권, 몇 페이지에 어떤 대사가 있었는지도 기억할 정도로 많이 봤던 만화책이 바로 <캔디 캔디>입니다. 1979년에 한국에서 출간된 책을 사촌언니가 가지고 있었고 언니 방에서 정말 많이 봤던 책입니다. 앞에 적은 <아카시아>와 함께 나중에 언니가 결혼하면서 소장하고 있던 만화책 전부와 그림카드들을 물려주어서 지금까지 제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래되어 색이 바래 누래진 낡은 종이를 가진 만화책을 넘길 때면 어린 시절의 제가 책장 사이에서 홀로그램처럼 피어오르는 듯합니다.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영국과 미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지금 다시 봐도 큰 역경을 이겨나가는 캔디가 대단스러운 성장만화입니다.
사실 어릴 적에 그렇게나 많이 읽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스무살이 넘어서 다시 읽고나서야 모든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렸던 초등학교때도 닐과 이라이자의 못된 행동에도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아원인 포니의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며 친했던 애니가 부잣집에 입양된 후 부자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고아원 출신인 걸 숨기고 싶다고, 앞으로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받고서 울고 있던 그녀에게 나타난 언덕 위의 왕자님. 그로부터 꼬마 아가씨, 웃는 얼굴이 더 귀엽다는 말을 들은 후로 힘든 일을 겪고서 다시 힘차게 웃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캔디가 언덕 위의 왕장님을 닮은 안소니를 장미 정원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낮잠을 자던 아치를 본의아니게 깨우게 되면서 처음만났을 때 한 말, 좋은 향이 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좋은 향의 존재를 인지한 그 순간이요. 발명에 흥미를 가진 스테아도 만나게 됩니다.
아드레이 가문의 로건 가 이라이자의 이야기 동무로 왔으나 안소니, 아치볼트, 스테아의 관심을 받는 모습에 마굿간에서 말 옆에서 자면서 말똥을 치우고, 바닥을 닦는 궂은 일을 하는 캔디. 빈 집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알버트가 물에 빠진 캔디를 구해주고 함께 지내면서 캔디가 마굿간에서 하녀 견습생으로 지낸다는 사실을 알버트는 알게 됩니다. 도둑 누명을 쓰고 멕시코로 보내어지던 날 구출되어 아드레이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인 얼굴은 뵌 적없는 윌리엄 큰아버지의 허락하에 아드레이가에 양녀가 됩니다. 캔디가 멕시코 농장에 보내진다고 했을 때 안소니, 아치, 스테아가 멕시코가면 죽는다고 했던 말들이 타코, 브리또같은 멕시코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뉴욕에 있을 때 멕시코 칸쿤같은 휴양지를 여자친구들끼리 가자고 했을 때에 전혀 갈 마음이 들지 않게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양되고 처음 갖는 저녁 식사 때 이라이자는 스프 먹는 법을 알려주면서 고아원 출신이라 예의 범절은 배우지않았을 거라고 하자 캔디는 바로 "응, 그래."하고 수긍해버립니다. 그리고는 앞으로도 잘 가르쳐 달라고 말합니다. 친절을 가장한 공격하는 말들, 핀잔과 놀림을 바로 수긍해버리는 것은 그 말을 한 상대방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됩니다. 그 지혜를 캔디는 이미 알았던 것입니다.
장미꽃 가꾸는 걸 잘 하는 안소니와 만나게 되는 장미꽃 정원의 향기를 상상해보고는 합니다. 안소니하면 장미 향이 바로 떠오릅니다. 아드레이가 가문의 여우 사냥때 달리는 말에서 떨어져 죽은 안소니, 너무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죽어버리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잔혹한 설정입니다. 2권에서 죽다뇨. 안소니 죽을 때 여전히 울게 됩니다. 안소니가 죽은 것이 자기 떄문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찾은 장미 정원, 그 곳에서 알버트를 만납니다. 그리고 알버트는 안소니가 죽은 것을 슬퍼하기보다 만나게 된 것을 기뻐해야한다는 말로 캔디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운명이란 남에게서 받는 것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개척하는 거라 말해줍니다. 제게 이 말은 할아버지가 어릴 적 해주셨던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한단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살으렴."말씀과 함께 크게 와닿았습니다. 안소니가 죽고 포니의 집으로 돌아가 터전을 잃을 뻔한 포니의 집 문제도 해결합니다. 문제해결자인 캔디. 다시 포니의 집을 떠나 영국의 성바오로 기숙사 학교로 가는 배 안에서 캔디는 잠깐이나마 안소니의 뒷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울고 있는 테리우스를 만나게 됩니다. 울고 있던 캔디가 그 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안소니의 죽음으로 성장한 캔디가 울고 있는 누군가를 돕게 되는 것입니다. 마중나온 아치와 스테아와 함께 빅 벤, 트라팔가 광장, 피커딜리 서커스를 구경합니다. 지금 우리들도 영국 런던에 가면 보게 되는 그 곳들을요. 캔디때문도, 우연도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저의 첫 해외 여행지가 런던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다시 만난 이라이자는 모든 이들에게 캔디를 고아원 출신으로 자기집 마구간 청소일을 했다고 하며 따돌리기를 시전합니다. 사람들은 영웅이 시련을 겪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다고들 합니다. 만화나 영화와 같은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영웅은 원래는 출신이 좋은데 어떠한 계기로 사회 계층의 바닥생활을 하며 또는 엄청난 고난을 겪으며 결국에는 최고의 자리, 즉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설정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이겨나가는 영웅, 주인공이 대단하지만 왕족, 귀족, 신에 의해 선택된 운명의 아이와 같은 애초에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설정을 가지고 있어야, 애초에 저들의 성공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기에 가능하기에 고난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응원하게 되는 인간 심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녀와 야수>의 실사판인 영화에서 여주인공 '벨'이 알고보니 지체높은 귀한 혈통이라는, 만화에는 없던 설정때문에 저는 영화보다 만화 <미녀와 야수>를 더 좋아합니다. <캔디 캔디>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생물학적 부모를 모르는, 알고보니 부잣집 딸이라는 설정이 아닌 그저 한 사람인,고아인 캔디가 오로지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고 또 주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바라고 이겨낸다면 누구든지자신의 이야기를 멋지게 써내려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캔디 캔디>가 좋습니다.
<캔디 캔디> 3권, p.71
고아로 놀림당하는 캔디를 도와주는 테리우스가 캔디가 고아로 태어난 것은 캔디의 책임이 아니라며, 본인에게 책임이 없는 일을 가지고 놀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는 테리우스의 말은 제게 큰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릴 때는 외모때문이었는지 장미꽃을 좋아하는 안소니가 참 좋아서 '안'씨랑 결혼해서 자식 이름을 '소니'라 짓겠노라는 말도 했었습니다. (저희 작은오빠는 좋아하던 작품의 여자 주인공 한국어 이름을 따서 딸을 낳으면 '소리'라 이름짓겠다고, 오소리. 다행인 건지 어쨌거나 제 조카는 오소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는 3권에서 캔디를 괴롭히는 이들에게 이렇게 할 말을 명확히 하는 테리우스가 좋았습니다. 어쩌면 캔디가 성장하면서 만나는 남자도 성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안소니는 캔디가 위험에 처했을 때, 캔디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고 캔디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캔디가 행방불명되었다 돌아왔을 때 뺨을 때리는 안소니의 행동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아무리 화가나도 때리다니.
애니가 학교로 오지만 캔디와 거리를 두고, 엄격한 기숙사 학교 생활 속에서 아치와 스테아를 만나기 위해 깜깜한 밤에 줄을 타고 남자 기숙사에 가는 캔디. 싸움으로 피나는 테리우스가 잘못 들어온 곳이 하필 캔디의 방이고 다친 그를 두고볼 수 없어 약을 사러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학교의 규칙 따위 다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깨버리는 인류애가 넘치는 캔디입니다. 그렇게 나간 길에서 알버트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미국도 아닌 영국에서 말이죠. 물론 끝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아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만화같은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도 홍콩의 마켓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홍콩의 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리다가 작은오빠 친구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저의 알버트가 결단코 아니지만요. 테리우스가 유명한 여배우의 아들이라는 비밀을 우연히 알아버린 캔디. 아치와 스테아와 옛 사진들을 보며 안소니를 떠올리게 된 그 날 밤, 말을 타고 가는 테리우스를 안소니로 착각하여 말을 타지 맒라고 말하며 계단에서 굴러 쓰러집니다. 청소년기 좋아하던 사람을 잃은 아픔이란 물론 가족, 친구까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사회에 나와 알게 된 언니가 한 번은 술을 마시면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있잖아. 신문에 보면 아주 작게 '어디 도로에서 교통 사고 사망' 이런 기사 있잖아. 내가 고등학교 때였는데, 그 몇 줄도 안 되는, 그 몇 개 안 되는 글자가 내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의 사망기사였어. 그 이후로 신문을 보는게 무섭더라." 참으로 공허한 말의 무게감을 가진 그 말이 투명한 소주잔에 담긴 소주향과 함께 제게로 왔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깊은 슬픔에 그저 조용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