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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세련된 이별을 해왔어요

< 내가 올 때 까지 잘 있어요 >

 자주 얼굴은 보았지만 별로 친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서로 불편했을 수도 있는 관계였다. 사실 나는 그와 친해지려 노력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나랑은 잘 안 맞는 성격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해외로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는 직업상 자주 해외에 살다가 다시 귀국해서 살다가 또 나가곤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공지가 내겐 별다른 뉴스로 느껴지지 않았다. 떠나기 두어 달 전부터 알려주었기에 이별이 크게 와닿지도 않았다.      


  우리는 평소와 같았고 그는 늘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기에 누구와도 잘 이별해 온 사람으로 보였다. 걱정 없이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고 여기서의 미련 같은 것도 내비친 적은 없었다. 늘 세련된 이별을 하는 사람. 그가 몇 년 해외에 있다 온들 우리 사이 달라질 건 없었다.     


  하지만 나와 헤어지는 건 처음이었다.      

  떠나기 하루 전날 나를 찾아온 그가 말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건강하고, 잘하고 있어요.”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언제 기다린다고 했었던가? 뭘 잘하고 있으라는 거지? 그런데 그의 눈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 때문에 무언가 툭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심장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내 어깨를 잡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본 후였다. 그 순간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새삼 너무나 분명하게 이별이 코앞에 닥친 것을 실감했기 때문에.     

 

  그는 재회를 기약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이별 방식이었던 것 같다. 마침내 서로 마주한 두 손, 재회를 다짐할 때 손의 온도와 감촉은 아무리 짧았어도 잊히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흠칫 눈물이라도 날까 봐 당황했던 그 순간 나는 무얼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당신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당신과의 이별도 슬프지 않아요. 나는 아무렇지 않아요.     


  그처럼 세련된 이별을 한 척했건만 그가 떠난 후로 내 일상은 그다지 세련됨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가 사라진 거리는 퍼즐이 하나 빠지듯 완성된 그림으로 보이지  않았다. 별다른 말을 주고받은 적도 없었는데 그가 없어진 게 갑자기 아쉬운 날도 생겼다. 울고 불고 하는 대단한 이별만이 남은 사람을 고독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람은 일상을 그리는 동선 속에서 저마다 일정한 패턴을 그리며 살아간다. 동선 속에서 매일 스치는 이웃이 실은 현재 나의 삶을 가장 분명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 아닐까.      


  바람이 스며들듯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보통의 이별. 그런 이별을 많이 해왔다는 그를 다시 만난다면 한번쯤은 그를 제대로 안아주고 싶다. 평온한 듯 아무렇지 않아야 살아가기 편했을 그의 세련된 이별을 이번에는 내가 살살 어루만져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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