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희 Dec 24. 2023

점점 확실한 이별

< 이젠 가지 말아야지 >

 그는 언제나 7시 15분에 출근했다. 내가 먼저 출근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밤을 새우면서 그의 도착시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소리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우리 팀원들이 다 올 때까지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7시 15분 이후에 오는 이들은 그가 회사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날은 그야말로 전쟁 같은 밤을 보낸 다음날이었다. 무언가를 완성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분명히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구조상 그의 방을 지나쳐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방 안에서 누군가가 무슨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같았다. 한 번 들어가면 사람의 소리라곤 들리지 않던 저 방에서 노랫소리라니.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표정. 투박하고 간단한 문장들을 허스키한 사투리로 툭툭 내뱉는 어법.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법이 없어 재차 질문, 혹시 확인, 행여 정정 이런 건 아예 꿈에도 꾸지 못했던 상사. 누구와도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 당시엔 그 정도가 내가 내릴 수 있는 후한 평가 일 것이다.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노래 소린 다음날도 이어졌음을 확인했다. 내가 너무나 궁금해 7시 13분에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기왕 궁금한 거 작정하고 커피를 타서 똑똑 거린 후 문을 열어보았다. 속으로 무슨 오디션이라도 준비하시는 건가 싶었다.    


  그는 통화 중이었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주었다. 약간 미소 띤 얼굴로 기분도 좋아 보였다. 천천히 그의 책상에 커피를 놓기까지 저쪽 전화 상대는 여성이며 방금 그녀와 헤어지고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첫사랑이었다. 남쪽 지방에서 서울로 공부하러 오기 전까지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고향 사람. 7시 15분에 오는 날이면 지방에서 올라오는 것이었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와 통화를 했던 거였다. 그땐 핸드폰이 없었다. 그녀의 전공은 음악이었고 따라 부르던 노래는 가곡이었다. 아침 노랫소리는 한 달 이상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그는 예전보다 말이 많아지고 눈빛도 따스해졌다.     


  그리고 나는 7시 13분에 출근하는 더 지독한 팀장이 될 수 있었다. 커피를 갖다 드리며 그의 안타까운 이별 플러스 사랑 이야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네에서 유명했지.”     


  그는 한밤중에 내려가 바닷가 차 안에서 두어 시간 이야기만 나누다 돌아온다고 했다. 서로 가정이 있고 각자 가정에 충실한 사람들이어서 무얼 어쩌겠다는 건 아니라고 했다. 직원들이 모두 출근하기 전까지 나는 한동안 그의 첫사랑과 헤어진 사연을 들었었고, 두 사람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이제 가지 말아야지 하던 그가 생각난다. 어쩌면 그들은 처음부터 또, 다시 보지 못할 날은 언젠가 올 거라는 걸 알지 않았을까. 칼 같고 돌같이 차가운 사람도 첫사랑은 어설프고 어이없는 일이었다. 다시 못 볼 그날이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아도 헤어지고 온 순간만큼은 멈출 수 없었던 두 사람의 노래가 삼십 년 전이다. 그때 몰래 노랠 엿들은 애송이 직원이 벌써 당신들의 나이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련된 이별을 해왔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