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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닫혀버린 문 앞에서

< 그렇게 가버리는 법이 어디 있어요 >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하얀색 양복이었다.      


아래위로 하얀 사람이 또 얼굴은 시커멓기 짝이 없었는데 머리에 파마까지 했으니 저 멀리서도 눈에 띄지 않을 방법이 없는 친구였다. 앙드레 김도 아니고 왜 그렇게 흰색 양복을 입어요 하고 물으면 스스로 깨끗해지고 만나는 사람도 깨끗해지라고 그렇게 입고 다닌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도 옷 장사를 한 적이 있지만 흰색 옷은 아래위 막론하고 입을 때도 신경 쓰이고 세탁도 함부로 해서는 안되고 옷 수명 자체가 여간 짧은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고집이 좋았다. 누가 뭐라 그러건 자기 생각을 일상에 반영하고 또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디 대한민국에서 쉬운 일인가. 옷가게 할 때 손님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바로 어떤 게 잘 나가요? 였다. 남들과 똑같은 건 싫지만 또 남들이 입지 않는 옷은 선택하지 않는다. 괜히 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친구가 다른 옷을 입은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장사 잘되죠?”     


하얀 양복의 주인공은 내가 운영하던 와인바에 술을 가져다주던 영업부장이었다. 이름도 성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는 그 차림으로 늘 그 구역을 돌면서 사장들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한 시절 와인바를 한 적이 있다. 특별히 내가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잠이 안 와서 한잔 두 잔 홀짝홀짝 마시던 것이 그만 와인에 대한 지식이 많아져 버린 것이다.      


그땐 젊었고 근사한 와인바의 주인이 되어 사람들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먹어본 와인을 권하고 싶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당연히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도전했고, 실패했다.     

 

생각했던 만큼 매출이 오르지 않아서 나는 그 친구에게 아이디어를 좀 부탁했다. 아무래도 지역 상권을 잘 알고 돌아가는 분위기도 잘 알 것이니 뭔가 묘책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자기 일처럼 우리 가게를 방문했다. 주로 오픈하기 전 3시경이었는데 원래 자기가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두어 시간 앞서서 나온 것이었다. 밤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그 한두 시간을 앞당기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니까 낮에도 장사를 하시면 어떨까요?”     


그 친구는 와인바와 어울리는 스파게티와 돈가스를 직장인 점심 메뉴로 팔아보라고 추천했다. 주방장은 자신이 구해준다고 말이다. 대신 어떻게든 그 주방장이 왔을 때 레시피를 잘 지켜보다가 배워놓으라고 당부했다. 동네가 시골이라 수틀리면 다음날 안 나올 수도 있으니 그때를 대비해서 꼼꼼히 받아 적어 놓아야 한다고. 


양복친구는 보름을 나와 함께 마주 앉아 메뉴와 가격, 인테리어, 마케팅등의 사업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떤 날은 폭우가 쏟아져 손님이라고는 하나 없을 때였는데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가짜 손님이라도 앉아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문 열었을 때 진짜 손님이 다시 문을 안 닫는다고 사람을 몇 명 불러다가 테이블에 앉혀 놓은 적도 있다. 


그리고 드디어 신메뉴를 선보이는 그날이 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친구는 안보였다. 그날은 전화를 할 여유도 없이 손님이 너무 많이 들이닥쳤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양복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소위말하는 오픈 빨 때문이었는지 연일 손님이 몰려들어 나는 정신이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쯤인가 지나서 양복친구를 소개해준 컨설팅 대표가 매장을 찾아왔다.    


“이런 일이 있나.... 그 친구 그만 심장마비로 세상 떴다고 해요.”

“거짓말, 저랑 며칠 전까지 여기서 이야기하던 사람인데요.”     


살다 보니 바로 어제 얼굴 보고 마주 앉아 차를 마셨지만 오늘 거짓말처럼 그이가 죽을 수도 있었다.      


“알고 보니 사채를 많이 써서 늘 빚독촉에 시달렸다고 하더라고요. 채무자들이 부검하자고 난리였다네요. 애들이 다섯 살, 세 살이라는데 사람 참 알 수 없지요.”     


양복친구가 사망한 날은 신메뉴를 오픈하는 첫날이었다. 아침부터 매장에 그 친구가 보내온 화환이 도착했는데 그땐 그가 숨을 거든 후였던 것이다.  비록 보름이었지만 나는 그 친구가 없었다면 다시 용기를 내서 일어서고자 하는 마음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신메뉴를 오픈하고 얼마 안 있어 주방장은 매니저 언니와 눈이 맞아 함께 그만두었고 나는 졸지에 주방으로 들어가 돈가스를 튀겨야 했다.      


손님은 점점 늘어갔는데 장사가 신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한 사람이 없어졌는데 세상은 참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그러건 말건 날은 잘도 저물고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가만있기가 어려워 그 친구의 집이라도 찾아가 보려 했는데 세상에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전화번호도  몰랐다. 늘 그 친구가 때 되면 가게 문을 열고 알아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도 가정사도 개인사연 같은 건 알 리가 만무했다.      


나는 어떤 얼음 속에 갇힌 사람처럼 그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고 명복을 빌고 하는 시간도 가질 수 없었다.  그 친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후 나는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곤 마침내 가게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그 지역에서 살 수 없었고 더는 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살면서 주변 지인 중에 그런 죽음을 맞은 사람이 두어 명 있다. 늘 같이 나누었던 시간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내 입장만 생각하고 기억을 떠올리기가 두려웠다.  정확히는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를 몰랐다가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로 인해 그가 손잡고 있던 모든 세상의 문은 닫힌다. 한번 닫힌 그 문은 절대로 다시 열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 문 앞에서 속절없이 자릴 떠나질 못하고 나 같은 사람은 잽싸게 등을 돌려 다른 세상으로 향한다. 


그때 도망쳐 나온  한 사람이 너무 늦었지만 비로소 정말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낯선 곳에 이사와 무턱대고 도전해 본 와인바였는데 당신이 없었다면 하루하루가 막막했을 거라고. 한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그 친구의 명복을 다시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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