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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 그때 알았지만요 >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모래가 빠져나가듯 그렇게 멀어진 사람이 있다. 


  한때는 거의 매일 통화하고 밥도 같이 먹고 주말을 계획하고 그렇게 평생 보고 살 줄 알았던 사람들. 이성 친구는 비교적 헤어진 이유와 시점이 명확한데 동성이면서 가까웠던 사이는 이상하게도 어떠한 갈등 없이도 관계가 멀어진 적이 있다. 바로 어느 한쪽의 조건과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무남독녀였던 나는 늘 언니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그래서였는지 주변에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언니들이 항상 많았다.  그 언니는 다른 언니들과 달리 나를 부를 때 꼭 이름뒤에 씨자를 붙였다. 그냥 말 놓으라고 해도 한사코 이름만은 그렇게 불렀다.   아마 처음 인연이 손님과 고객 사이여서 그랬던 것 같다.


  언니를 알고 한 1년쯤 흘러 내가 옷가게를 하게 되었고 언니는 입장이 바뀌어 내 매장의 손님이 되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옷을 사러 온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궁금해 주기적으로 매장을 들렀던 것 같다.      


 "동생은 이런 거 할 사람 아니지."

 "뭐가 어때서요, 제가 해보고 싶었던 건데요."


  언니는 올 때마다 반찬과 음식을 잔뜩 해오고 어떤 날은 자신이 아는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는 했다. 내가 소화가 안된다고 하면 그다음 날 연잎밥을 먹어보라고 싸들고 왔다.  내가 그때 무엇 때문에 갑자기 옷가게를 하겠다고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 시절은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던 터라 밥은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자던 시기였다.      


  언니는 마치 감옥이나 요양원에 갇혀 있는 동생 하나를 딱히 여겨 찾아보는 태도로 나를 찾아왔고 나 역시 언니가 오면 잠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힘을 내곤 했다. 어떤 날은 진상 손님이 왔다간 후라  언니를 보고 말없이 눈물이 터진 적도 있다. 또 어떤 날은 같이 있는데 어떤 손님이 철 지난 옷을 하나 싸게 사간뒤 바로 달려와 옷에 뭐가 묻었다며 뭐 이런 상품을 파느냐고 화를 낸 적도 있다. 언니는 자기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갑자기 어떤 남자분을 하나 데려왔다.  목사님으로부터 우연히 소개받은 분인데 다시 혼인을 할 사람이라고 했다. 언니는 사별을 하고 혼자 살고 있었는데 집에 들어가면 불 꺼진 집이 싫어 아침에 불을 켜놓고 나온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쩐지 남자분이 내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사람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옷차림도 막노동판에서 막 나온 사람 같았고, 얼굴도 시커먼 데다가 팔에는 깁스까지 하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왔는데 언니가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남자분의 집은 부산인데 혼인하면 부산으로 갈 것이라 했다.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우선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한 것에 화가 났고, 그렇게 결정한 대상도 언니와는 어울려 보이지 않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이 사람한테서 이야길 많이 들었어요.”     


  그날 이후 언니는 두어 번 더 나를 보러 왔고, 그 후론 부산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소식이 끊겼다. 아니 어쩌면 내가 끊었다고 해야 맞으려나. 내가 연락하면  뭔가 부담을 줄 것 같아 몇 번이고 카톡창을 열어만 보고  인사 한마디 쓰지 못했다. 카톡창을 다시 닫을 땐 괜스레  프로필 사진에 함께 있는 그 아저씨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연락이 되면 좋겠다 싶다가도 어쩐지 그렇다고 다시 만남을 이어갈 것 같지가 않아 한 시절의 사람으로 간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날 언니가 아저씨를 데리고 왔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앞으로 언니를 못 보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 같았다면 그리 슬프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후로 십 년이 지났다. 휴대폰을 몇 번 바꾸었더니 카톡창에서도 언니는 사라지고 말았다. 가끔은 언니가 잘살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한 시절을 견디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인데 너무 내 생각만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 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이제야 내가 재혼을 했더니 갑자기 연락을 하지 않는 지인들의 심리를 좀 알 것 같다. 나는 그대로이고 그들을 향한 마음이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나의 조건과 환경은 설명할 수 없이 그들을 서운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분명히 작별하면서도 그리 슬프지 않다면, 그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못 보게 되더라도 그 순간의 마음이 슬픔의 크기를 좌우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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