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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짧고 긴 이별

< 얼마나 힘들었어요? >

 옛날, 그러니까 내가 어리고 어려 한 곳에 모인 친척들이 모두 나보다 키가 커서 그들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을 때 나는 그들이 나와 아주 가까워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바로 그들이 연속해서 인사만 할 때였다.


  "그래, 고생들 했습니다."


  명절이었고 친척들은 차례와 식사, 덕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끝날 듯 끝날 듯 서로 인사만 거의 30여분 넘게 멈추지 않았다. 손도 잡고 살짝 껴안기도 하고 이 차가 떠나면 다음 차에서도 절차는 반복되었다.

  현관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내려와서도 차 타기 전에도 차를 타서도 차가 멀어질 때까지도 그들은 서로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하려고 했던 말을 그 순간을 위해 일부러 남겨둔 것처럼 모두는 서로에게 가장 따스한 말을 건네며 일부러 이별을 늦추는 듯 보였달까. 

  짧았지만 긴 이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비로소 큰일을 다 치렀다는 만족과 안도감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사색의 시간을 가지셨다.

  살면서 우리는 가족 내에서 각자 역할을 맡게 된다. 싫든 좋든 떠 안겨지는 지겹고도 고독한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은 역할의 무게. 어쩌면 그들은 그래 오늘도 우린 우리 역할을 잘 해냈어하는 서로 간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아무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런 인사도 주고받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이별의 인사를 마치었다는 건 결국 내 역할을 다했다는 마침표. 

  이별이 길었던 건 그래 얼마나 힘들었냐는 다독임. 

  여러 번 반복했던 건 앞으로도 내 역할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 

  다음번의 나와 똑같이 마주할 당신 역시 용기를 잃지 않도록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이 명절을 기다리는 건 어쩌면 만남의 시간이 아니고 저토록 하고 또 했던 충분한 이별의 시간은 아니었을까 싶다. 달력을 보니 다시 명절이 돌아오고 있다. 지난봄에 아흔이 넘은 큰 이모님을 뵈었는데 그 얼굴이 마지막이 될까 봐 다시 찾아봬야겠다. 이제 웬만한 친척 어르신들은 언제 돌아가셨다 해도 크게 놀라지 않을 만큼 연세가 드셨다. 때문에 지금부터 찾아뵙는 시간은 거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명절이 오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는데 나도 나이가 드니 내가 어렸을 적 부모님이, 명절이라고 만나 뵙던 친척 어르신들이 왜 이리 그리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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