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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당신도 나와 같다면

< 나 안봐도 잘 살고 있죠? >

 미국에 출장을 갔다 돌아왔더니 다니던 연습장 카페에 매일 얼굴 보던 매니저 언니가 안보였다. 갈 때마다 밝게 웃으며 내가 잘 먹는 메뉴에 더 신경 썼다고 아는 척을 해주었는데 무슨 사고를 당하여 그만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몰래 그 친구의 쾌유를 빌었다. 산다는 게 참 내일을 알 수가 없어 오늘 만났다고 내일도 같으리라는 보장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겐 어느 날인가 자주 가던 가게가 나한테 말도 없이 문을 닫아버렸던 적이 있다. 손님한테 일일이 이별을 고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겠지만 그럼 이제 어딜 가라고 하면서 한동안 화가 나기도 했던 기억. 자주 지나가는 곳이었기에  화는 슬며시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주변 이야기 때문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시간이 지나자 그곳이 그리워졌다. 그리곤 가끔 주인 얼굴도 떠올랐다.


  특별히 기억해 줄 만큼 내가 그곳을 자주 이용하는 손님은 아니었다. 손님과 주인사이 돈독한 정을 쌓은 적도 없었다. 가만 보면 들릴 때마다 나 외에 다른 손님들과는 허물없이 친분이 깊은 것 같아 단골이 많구나 부럽기도 했던 것 같다. 바로 옆 가게 안경아저씨가 말해주었다. 무슨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같은 곳을 이용하던 동네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심하게 맞고 어디로 도망가느라 급하게 화장품 가게를 정리한 것이라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참 쉽게도 이야기하는구나 싶었다.

"무슨 일 하시는데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요?"


  어느 날인가 내가 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곳은 아무리 울적해서 들어가도 나올 땐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었다. 그날도 좀 기분이 나아지려고 들어갔던 것 같다. 그녀가 암에 걸렸건 남편에게 얻어맞았건 어쨌든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주인이었을까.

  잠시 매장을 운영할 때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는 무례하고 서운한 주인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두 달 전부터 장사를 그만할 것이라며 손님들에게 열심히 고지를 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유를 알고 싶어 했고 그럼 앞으로 무엇을 할 건지 궁금해했다. 그 질문이 듣기 싫어 나가기가 싫은 날도 있었다.

  매장을 정리하고 나서는 그 상가 앞으로 부러는 가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어쩔 수 없이 그 거리를 지나가야 했을 때 시선을 외면하는 내 마음도 목격했다.  누군가와 부딪힌다면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그리곤 결국 미처 나의 정리소식을 듣지 못하고 나중에라도 나를 찾아 가게를 방문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 손님의 마음은 나와 같이 화가 나다가 이해도 하다가 시간 지나 조그만 그리움으로 바뀔 수 있을지 궁금했고, 슬며시 걱정도 되었다.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의 각자 생활 동선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동선이 바뀌었다면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나 때문에 의도치 않게 자그마한 동선이 바뀐 사람이 있다면 그리하여 소소하게 안부를 물어보던 재미가 없어진 그녀들이 있다면 정말 미안하다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도 당신들처럼 여전히 그 재미가 그립다고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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