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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한 번의 실례, 그후

< 엄마, 나는 아니야 >

  다 쓰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새것으로 바꾼 적이 있다. 어딘가 고장이 나거나 망가지지도 않았는데 그저 새 모델이 나왔기에 당연히 이전 것을 저버린 것이다. 물론 그렇게 바꾼 새로움은 다음의 새로움이 등장할 때까지만 새롭다. 언젠가부터 새롭지 않은 모든 것이 마치 나 혼자만 뒤쳐진 행보로 비칠까 주위를 돌아본 적은 없었던가.


  차를 샀었고 헌 차가 되면 새 차로 교체했다. 새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은 헌 차를 가져가므로 내게 남겨진 차는 언제나 새 차뿐이었다. 그날도 그랬고 몇 년 탄 것 같은 헌 차는 매번 흔적 없이 사라지곤 했다. 새 차를 보면서 풍선같이 부풀어 오르던 일종의 허영심이 한가득 채워지는 순간 헌 차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은 신기하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땐 새것 만이 진리라 여겼던 것 같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차를 인수받고 기쁜 마음에 제일 먼저 아이를 데리고 지하주차장에 내려왔다. 함께 기쁨을 누리고자 아이에게 우리 차가 바뀌었네? 하면서 흥을 돋웠다. 그런데 아이는 웃기는커녕 점점 울먹이더니 마침내 자리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우는 것이다. 울음소리가 너무나 커서 그 이유가 차 때문이라고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놀랄 만한 무언가를 본 줄 알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주차장엔 아이와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처음 본 새 차.


   "엄마,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아이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울먹이며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새 차에 맨 처음 태워주려고 했는데 끝내 아이는 눈길도 주지 않아 모녀시승식은 보기 좋게 거부당했다. 생각해 보니 아이에겐 태어날 때부터 집처럼 차가 존재했다. 카시트에 앉아 할머니 집을 오갈 때부터 조금 더 커서 마트나 박물관, 나들이를 갈 때도 항상 그 자리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친구랑 놀이공원을 갈 때도 아빠랑 여행을 갈 때도 할머니와 외식하러 갈 때도 아이는 그 차 말고 다른 차를 타 본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차는 본인 짧은 생에 있어 일상에서 분리될 수 없는 침대나 소파, 책상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태어나 그때까지 살아온 자신의 일생에 가장 많은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아이가 통곡을 하며 울어버린 그 이유는 사실 내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이리저리 아이를 태우고 돌아다닌 건 나였기 때이다. 어쩌면 나는 아이의 반을 차에서 키웠는데 무사히 그리고 편하게 아이를 키워준 차를 향해 너무나 큰 실례를 범한 건 아닐까.

  그때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건 헌 차와의 이별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했던 그 시간과 소중한 추억들에 한번도 고마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새것이라고 아이도 좋아할 것이라 여긴 내 속물근성을 한참이나 반성했다. 어떤 이별은 그동안의 추억과 그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그때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우리 집안을 꽉 채우고 있던 소파를 오래오래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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