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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다단계와의 이별

< 너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야 >

어느 날인가 나를 찾아온 언니가 있었다.      


결혼하고 임신해서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는데 언니는 내 상황을 어찌 알았는지 잔뜩 약을 싸들고 방문한 것이다. 임산부에게 좋은 건강식품들이었을 것이다.      


급작스런 임신은 내게 감옥과도 같았다. 대학원 공부도 더 남았고 집에서 놀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아 매일매일 불러오는 배만 쳐다보던 시절이었다. 그 언니는 그런 나의 불안한 멘털을 단숨에 휘어잡으며 일상의 도우미를 자처했다.      


“나랑 같이 설명회 한 번만 가보자. 거기 괜찮은 사람들이 많아. 의사도 있고 교수도 있어.”     


언니는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나를 방문한 사람 같았다. 나는 그걸 알아차렸지만 그땐 그게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마침 건네준 약들이 효과가 좋아 몸 상태도 나아지고 달리 하는 일도 없어 나는 언니를 따라나섰다. 언니는 자신의 스폰서에게 나를 소개하며 같은 학교 후배임을 강조했다. 사실 나는 그때 상품을 전달하는 마케팅 방법이나 소득으로 이어지는 판매구조 같은 건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약은 계속 사 먹을 것 같았고, 애 낳기 전까지 몇 개월은 집에 있느니 운동 삼아 외출한다 생각하고 밥이나 얻어먹고 수다나 떨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모임에 나갈수록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하나같이 나보다 연상인 언니들이었고 고학력에 남편의 직업도 그럴싸한 중산층이었다. 속 사정이야 어떻든 겉으로만 보면 절대 다단계 같은 개인사업은 하지도 듣지도 않게 생긴 사람들이었달까. 


그렇게 알게 된 언니들은 내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고 안부를 챙기고 밥을 사고 몸이 안 좋다 하면 한밤중에도 달려왔다. 친언니나 동생, 엄마라도 그렇게까지 내 수발을 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임신 말기에는 거동이 불편하므로 언니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나는 정신적으로도 의지를 많이 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그들이 주는 건 무엇이든 거절하지 않고 거길 다녔다.      


“너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야. 그래서 난 네가 꼭 성공하길 이 세상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 언니는 모임에 나올 때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나와 우아한 자세로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강연자의 설명을 들었다. 신제품이 출시되었다고 시연회를 할 때는 몇 배로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그땐 더 화려한 차림으로 앉아있곤 했다. 올림픽 공원 체육관을 빌려 성공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사에도 초대받아 가보았다. 그들은 영화배우처럼 드레스를 입고 나와 자신이 이 일을 하게 된 이유와 어떻게 성공하게 되었는지 말을 하면서 중간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언니들 중에는 따라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나는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만 분의 일의 확률로 일어난 어떤 부작용 때문에 아이는 무사했지만 출산 후 두어 달이나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비로소 그들 언니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같이 행복하자던 그들은 거짓말처럼 하나 둘 내게 연락을 끊었고 어떤 사람도 병문안을 오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퇴원을 하더라도 당분간은 갓난아기를 돌봐야 하는 산모다 보니 그들 입장에서는 사업적으로 내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임신 기간 중에는 왜 그렇게 내게 잘해주었던 것일까. 알아보니 그들은 나를 연습대상 삼아 진짜 고객을 설득하기 위한 준비과정 정도의 용도로 잘 써먹은 것이었다. 나 역시 아기를 낳기 전까지만 일시적으로 활동을 할 생각이었으므로 우리의 진정성은 사실 거기서 거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매일을 만나고 서로의 건강을 챙기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면서 미래를 약속했던 사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그들을 보지 않아도 한 번에 없었던 일이 되진 못했다. 서로 도달하고자 했던 목적이 달랐고 내 환경이 변했지만 어떻게 하루아침에 우리가 나누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건가 싶어 한동안 허탈하고 실망스러웠다.  

    

그 집단 안에 있을 때는 서로에게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는데 그 테두리 밖으로 나오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사이. 아니 아예 몰랐던 사이보다 못한 사이. 그게 다단계라는 울타리의 특징인 것일까. 그 후로는  아이 낳고 어떤 조직에든  몸담고 일하면서 나는  지금 나누고 있는 것이 아무리 소중하고 강렬해도 이 조직만 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감정이 될 것 같아 쉽게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살았다. 물론 사람한테 쉽게 정을 주는 내 성향이 변하지 않아서 늘 상처받는 쪽이었지만 말이다. 


내 젊은 날의 씁쓸한 추억으로 남은 다단계의 시간. 그때 임신했던 아이의 나이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의 웃음소리가 서글프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해서 이전 사랑이 사랑이 아닌 건 아니듯이 그때 언니들의 애정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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