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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7. 2023

말하기 싫었던 그러나 말하고 싶었던

< 죽을 것 같아도 살아지다 >

이제 나는 저 깊은 곳에 숨겨둔 나만의 이별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왔다. 꼭꼭 숨겨둔 이별 상자를 열어서 나는 이런 이별도 해봤노라 그러니 내가 당신들보다 더 슬펐고, 지금도 슬프고, 앞으로도 슬플 거라 주장해야 할 시간이 왔다.      


내가 이별에 대해 특별한 감정과 더 깊은 생각을 해야 했던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와 비밀스러운 관계였기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별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 이별도 특별한 이별로 여겨 드릴 수 있다. 어떤 경우는 내 쪽에서 원치 않는 이별을 했기에 혹은 이별의 과정이 힘들었기에 아니면 이별 후 시간이 고통스러웠기에 누가 묻지 않는 한 입 밖으로 꺼내놓는 콘텐츠가 아닐 수도 있다. 모두 공감하고 고개 끄덕일 수 있다. 그래도 나 만큼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다. 


나는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은 절대로 그런 종류의 이별을 하고 싶지가 않다. 아니 나에게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이별을 주어서는 안 된다. 삶이라는 불확실한 확률 속에서도 앞으로 두 번은 내게 일어나지 않을 이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의 어머니는 그날 그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치셨다.      


이른 봄이었다. 봄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할 무렵 엄마는 꽃구경을 가셨다. 엄마는 자신이 죽기 전날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 못하셨다. 늘 그렇듯 나는 퇴근하며 전화를 했고 엄마로부터 아이는 밥 잘 먹고 잠이 들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엄마는 ‘간다’하시며 비로소 집에서 퇴근을 하셨다. 깃털처럼 가볍고 깨끗했던 엄마의 뒷모습은 내가 본 엄마의 마지막이었다.     


그다음 날 나는 출근하면서 안개가 유난히 많다는 뉴스를 듣고 그 시간엔 잘하지 않던 전화를 했다. 8시 20분이었던가 전화기 너머로 큰 이모, 막내 이모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소설로 치면 복선과도 같았던 안개 소식은 벌써 잊은 채였다.     


"엄마 좀 빌릴 테니 며칠만 참아" 

"우리야 막히면 놀면서 가면 되지."   

엄마의 목소리도 어제의 어두운 표정과는 달리 밝아 보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 역시 세상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의 사고 소식을 들은 날 나는 너무 외로웠다. 외로움 같은 감정을 크게 느끼며 살아오지 않았는데 확실하게 그날은 미치도록 외로웠다. 나는 그날 밤 뉴스에서 엄마의 사고 장면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사고를 낸 버스 운전수의 어눌한 목소리도, 사고를 목격한 사람의 흥분한 인터뷰도 남일 보듯 그렇게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우리 엄마가 뭘 잘못했어. 다 이모들 때문이야. 이모들이 죽어야지. 우리 엄만 아냐... 우리 엄마 불쌍하잖아. 우리 엄마 억울해서 어떡하라고... “     


엄마는 오랫동안 아버지 병시중으로 몸과 마음이 편치 못하시다가 아버지 가시고 겨우 병원에서 해방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이제야 건강하게 손자 재미에 행복을 느끼고 사시는 중이었다.      


억울하고 또 억울하여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내 가슴을 쳐보면 애꿎은 눈물만 주르륵 흘렀다. 잠시 영안실 뒤편에서 울다 지쳐 깜박 잠이 들었던지 엄마의 환영을 몇 번이나 보았고 엄마는 내 손을 잡으려 다가오는데 놀란 내가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저는 그때 그 할머니 내리시던 그 표정 뭐랄까 설레고 미소 짓던 그 표정을 못 잊겠어요. 혹시 그분... 따님이세요?... 죄송해요... 제가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어서..." 

"혹시 현장 주변에 할머니들 신으시는 신발 못 보셨어요?"

"신발이요? 아... 그게 그러니까 저쪽 화단에 한참 동안 걸려있었죠. 오른쪽 짝이었는데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가 바로 엊그제 치웠어요. 너무 을씨년스럽게 있어서 쓰레기 정리하는 아저씨한테 치워달라 부탁했지요. 이렇게 늦게라도 오실 줄 알았으면 치우지 말걸 그랬네요. 오실 분들이면 벌써 왔을 거 같아서... 어쩌나 죄송해요. “ 


세상에 한 사람이 없어졌는데 나에게는 세상 전부가 사라진 것 같았던 그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그 날들.     


하지만 이제 다시는 봄마다 엄마를 소환해서 같이 산책을 가자고 떼를 쓰지 않으려 한다. 나랑은 꽃구경도 한번 못 가보았다고 엄마를 미워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년에 봄은 다시 올 것이고 꽃은 또 피겠지만 구경 가신 그 손을 이만 뜨겁게 놓아야 할 때 인 듯해서다. 


십오 년이나 지나서 나는 그날 엄마가 전에 없이 불렀다던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알 것 같다. 3월 이른 봄치곤 유난히 따스했던 그 봄날 엄마는 진정으로 살랑이는 봄바람에 행복한 여심이었을 것이다.      


이별의 슬픔은 때로 두려움을 넘어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죽을 것 같은 그 마음도 언젠가는 살고 싶은 마음으로 싹트는 날이 기어이 온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이별에 대해 고개 숙여 위로와 격려를 드린다. 

이별이라는 도움닫기로 다시 세상에 한 발자국 내딛는 당신들이 있어 외롭지 않은 오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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