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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8. 2023

기획자의 메모리 노트 1 :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 것이 맞다.

공모전의 추억      


  기획자에게 첫 공모는 첫사랑이나 첫날밤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이다. 30년 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처음으로 취업한 회사에서 꽤 규모가 되는 코엑스 전시 공모에 참여했다. 전자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제안서라는 것을 본 적도 없었고 쓸 줄은 더더욱 모르는 풋내기 신입사원일 뿐, 어찌 보면 공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회초년병에 불과했다.      


  “꼼빼가 있어.”

  (competition(경쟁)의 뜻, 설계공모를 칭할 때 부르는 의미로 만들어진 일본 조어이다.)     


  제안 공모를 통해 설계와 시공의 자격이 부여되는 입찰에 있어 제안서는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신생아와도 같다. 기획자는 자신의 머리에든 지식, 그간의 경험, 기간 내 얻어진 정보, 집중력과 순발력, 체력으로 공모 안을 만들어 낸다. 공모 안을 제한된 시간 안에 매력적인 안으로 구성하기 위해 기획자는 그 기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공모의 목적은 당선이기 때문이다. 공모 안은 이 땅에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디어로 완성되는 가장 이상적 그림이어야 한다. 어차피 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늘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며 그 변수를 해결하지 못하면 실패와 직결되므로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일에 속한다. 각종 경조사 및 집안 행사와 친구, 애인과의 만남, 취미활동, 신체 및 건강관리 등 모든 사적인 활동은 사실상 중단되며 심지어 설날과 추석, 성탄절 같은 국민 기념일에도 출근 혹은 작업이 유지된다. 고도의 집중을 하지 않으면 양적, 질적인 결과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      


  나의 첫 공모 시기, 그때는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다. 잠시 다른 것에 눈을 빼앗길 틈도 없었으며, 밤을 새고도 아침에 깨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에 시간의 흐름을,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도 어려웠다. 벚꽃이나 단풍 구경, 명동 거리 같은 보통의 일상은 불가능했다. 눈 떠 있는 시간이라면 다른 걸 보지도 듣지도 않는 그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기간 동안,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애를 쓰고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면, 내 아이가 그렇게 완벽하고 예쁠 수가 없었다. 기획자는 공모 안을 제출하고 나면, 나보다 더 애를 써서 애를 낳은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내 아이의 모든 면이 다른 아이보다는 구석구석 가장 우수하다는 자신, 그리하여 이 아이가 반드시 최고로 선택되어 세상의 관심과 박수를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로 발표를 기다리게 된다. 다른 안을 보기 전까지 대개 그렇다.      


  공부를 잘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을 잘쳤다. 그러니까 시험을 전제로 한 공부에는 효율성을 최대로 발휘했던 것 같다. 시험에 나올 만한 것만 공부했고, 시험 직전에만 공부했고, 시험을 잘 볼 만큼만 공부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험에 나올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능력이다. 즉, 평가자가 만드는 기준을 알아채고 그 기준에 따라 답안을 꼼꼼히 준비하는 힘이다. 설명하기 쉽지는 않은데 효율성의 공부는 시험에 나오지 않을 만한 것은 과감하게 눈감는 용기이다. 그렇게 시험을 잘 보고 나면 오래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하지 않기에 사실 공부의 총량은 많지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제대로 공부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말씀이다. 어쩌면 공부가 하기 싫어 공부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학과 공부뿐 아니라 백일장, 독후감, 사생대회, 합창대회, 서예, 방학숙제, 환경미화, 과학의 날 그리기 대회, 불조심, 반공포스터, 표어 등 학교에서 주체하는 거의 모든 대회성 이벤트에서 나는 수상을 못해본 적이 없었다. 해당 분야의 실력과는 별도로 나는 상을 받는 법을 좀 일찍 깨달았다고나 할까.      


  나의 이러한 성향은 어릴 적부터 두드러졌는데 나는 무엇이든 평가자의 마음을 꿰뚫는 재주가 있었다. 일등은 최고라는 점수를 매기는 그 누군가의 마음에 달렸다고 믿었다. 공모에서 일등은 모든 분야에서 우수한 작품을 뽑는 것이 아니다. 공모 작업은 일등 할 만한 이유, 그 이유를 찾는 일이고, 그 이유가 다른 모든 이유보다 매력적일 때 선정이 되는 게임인 것이다. 기획자는 자신의 기획에 무엇이 매력인지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설령 누군가가 비슷한 매력이 있다 해도 아주 똑같은 안은 없기 때문에 무조건 내 매력이 어필되도록 총력을 다해야한다. 내가 만든 매력이 다른 모든 부족한 그 무엇들을 덮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일 때, 우리는 선택되고 그것을 당선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의 첫 공모, 첫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선택되지 못한 이유로 죽어야 했다. 아마 3일을 끙끙 앓았던 것 같다. 그때 사장은 나에게 정중하게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은 내정된 업체가 있었고 공모라는 형식 안에서 우린 들러리로 참여하는 것이었지만 내가 너무 열심히 하여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두 번 울었다. 나보다 더 최선을 다한, 나보다 더 매력적인 안이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울었고 그런 내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야 했던 것을 몰랐기에 그것이 미안해 울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도 처절하게 실패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나의 첫 공모. 그 이후로 어떤 공모에서 떨어졌어도 그때보다 슬프거나 아쉽거나 혹은 억울하지도 후회되었던 적도 없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때 그 마음도 옅어지고 희미해졌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주제나 아이디어, 그림, 그 어떤 전략하나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최초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총이라도 맞은 것 같았던 쓰라린 가슴의 날카로운 충격, 친한 누군가의 부고를 들었을 때처럼 숨이 딱 멈추던 아득함, 그럴 리가 없다는 강렬한 반발심, 내 속에서 나를 붙잡고 있던 무언가가 훅하고 빠져나가던 그 순간의 느낌말이다. 공모 안을 제출하고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되었던 기억도 함께다. 어떤 소식은 소식을 들었던 그 순간만이 영원한 것도 있다.     

 

  대학생일 때부터 제안공모 작업을 시작했으니 약 삼십년에서 십년정도는 다른 일로 빼앗긴 세월을 빼고 이십년간 무수히도 떨어지고 또 수없이 당선이 되었다. 그렇게 희비의 엇갈림을 경험했으면서도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쩌면 첫 공모에서 너무나도 쓰라린 패배를 하는 바람에 이른바 승부에 강한 맷집이 생겨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공모에서 당선이 되는 경우, 보통 발표가 끝나고 저녁 늦게라도 소식이 들려오지만 낙선일 경우는 그 다음날이 되어도 무소식인 경우가 많다. 밤은 길고 마음은 불안한데, 아침이 되면 누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고 할까.      


  돌아보니 그때 내가 그토록 괴로워했던 마음은 최선을 다했던 시간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그때 유독 컸다기보다 그냥 어렸기 때문인 것 같다.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과 순수가 가슴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그날의 내가 생각나는 건 아무래도 열정의 크기와 강도가 그리워서는 아닐까. 다시는 다시 할 수 없는 첫사랑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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