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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8. 2023

경조사의 의미

< 기획자의 나머지 시간_3 >

  바쁘게 살다 보면 누군가의 경조사에 참석하기가 쉽지가 않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특별히 친하지도 않은데 시간을 내어 얼굴을 내비치고 성의를 보인다는 것이 일종의 낭비라 느껴질 수도 있다. 지난 직장 생활을 돌아보면 일로서는 그렇지 않은데 인간관계에서는 후회되는 것이 많다. 나이 들어보니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누군가의 장례식, 결혼식이다.      


  회사에서 악명 높은 부장이 있었다. 다른 부서였고 직접적으로 마주쳐야 하는 일이 없다 보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날도 당연히 야근을 앞두고 저녁 메뉴로 무얼 먹나 우리끼리 잡담을 하고 있는데 우리 부서 임원이 기획팀장인 나와 디자인팀장을 불렀다. 타 부서 부장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너희 둘이 대표로 다녀오너라, 는 소식이었다. 바빠 죽겠는데 병원은 또 저 멀리 강 건너였다. 본인이 가면 되지 안 그래도 시간 없는 우리를 왜 앞세우나 싶어 마땅치 않았다. 우리 부서에서 아무도 안 가면 부서 간 위화감이 커지니 인사만 비추고 오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야근을 늦게까지 하고 밤늦게 병원을 들렀다.    


  평소에 인사도 하지 않는 사이였는데 부장님은 벌개 진 눈으로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정말 고마워, 한마디 하셨다. 나도 너희들이 바쁜 걸 아는데 이렇게 시간 내주어서 고맙다는 뜻을 여러 번이나 온몸으로 전하셨다. 평소에 악명 높다는 소문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세상없이 따스한 분으로 느껴졌다. 고생하신 어머님을 계속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니 괜히 오지 말까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내가 겸연쩍기도 했다. 매번 집으로 운전해서 가는 길에 졸면서 가기 일쑤였는데 그날은 졸지 않고 집에 잘 도착한 기억도 난다. 고맙다고 손 잡아주신 그의 진심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까. 나 역시 30대에 양부모님을 모두 보내드렸기 때문에 장례식장의 풍경이 얼마나 정신없는지 잘 안다. 그리고 신기한 건 그 와중에도 내 부모님 영전 앞에서 절하고 고개 숙였던 사람들은 그 표정까지 다 기억이 난다. 그 잠깐 순간에도 어, 의외의 사람이 왔네 하는 생각은 들었고, 또 그래서 더 고마웠다. 아마 그 부장님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장례식은 그렇게 정신없이 주변 사람들 때문에 보내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 앞으로는 기쁜 일보다 나쁜 일에 더욱 그 주변인이 되어 드리는 건 어떤가.   


  돌잔치는 또 어떤가. 아주 오래전에 티격태격 싸우다가 살림을 합치신 두 선배들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노처녀 여자 선배님이었는데 뜻밖에도 몸집이 큰 터프가이랑 결혼을 하셨다. 터프가이 남자 선배는 재혼이었고 여자선배는 초혼. 여자선배님이 아이를 낳아 벌써 돌이 되었던 것이다. 신혼집은 무슨 달동네처럼 산꼭대기에 있었다. 여자선배는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있었고, 단칸방에 조촐하게 상차림이 놓여있었다. 왜 그런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비록 산동네여서 초라하지만 지인들을 불러 아이의 탄생도, 자신들의 사랑도 축하받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날 연신 아이가 예쁘다고만, 잘했다고만 했는데도 여자 선배님은 자주 눈물이 차오르는지 훌쩍이셨다.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위험한 길이었다. 지금은 돌잔치한다고 직원들 초대하고 하는 문화는 많이 없어진 것 같다. 가족들끼리도 생략하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그때 그 아이는 아마 지금 서른이 다 되었을 것이다.           


  일을 사이에 두고 만난 사회적 관계라는 건 그 이해관계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어지고 또다시 만날 수 있는 사이다. 너무 친해도, 너무 적 같아도 결국 불편해지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하는 구성원이 아닌 인간 한 명으로서 마주하는 시간이 바로 그 사람이 가장 기쁘거나 가장 슬픈 경조사 순간이다. 꼭 친해서가 아니더라도 나도 인간이니 당신도 인간임을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소식과 연락을 받았다면 가는 게 맞지 싶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      


  가끔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상황에 따른 축의금의 기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기사를 보곤 한다.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상대적인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기 때문이며, 그 상대적 기준도 여러 변수에 의해 늘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엔 나와 친한 동료였는데 퇴사하였으니 지금은 안 친한 거 아닌가. 같은 부서 일 때는 같이 가자고 약속했는데 지금은 다른 부서인데 꼭 나까지 가야 하나. 내가 추천하는 건 내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여 초청을 하는 경우는 무조건 가도록 마음먹자는 것이다. 친분이나 관계를 재단하거나 뭔가를 계산하지 말고 가는 것이다. 참 희한한 것이 자주 얼굴을 내비치다 보면 저 사람은 연락하면 잘 오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많은 이들이 소식을 전해주게 된다. 반대로 잘 안 보이는 사람은 그 사람의 사정과 상관없이 같은 논리로 연락을 꺼리게 된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연락이 안 오는 것은 사실 내 하기 나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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