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8일이 내가 살던 신평 장날이었다.
학창 시절엔 5일장이 토요일에 서면 아침부터 설레고 좋았다.
하교하면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장구경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운 좋게 시장에 나온 아빠, 엄마를 만나면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부모님과 함께 집에 갈 수 있어서 좋았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니 부모님을 시장에서 만나면 로또 맞은 기분이었다. 동네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어디쯤에서 우리 부모님을 봤다고 하면 숨바꼭질하듯이 부모님을 찾아 나섰다.
추석, 설날을 앞두고 있던 장날은 볼거리가 더 풍성했다. 옷 장수, 생선 장수, 신발 장수, 건어물 장수, 뻥튀기 장수, 야채 장수, 이불 장수, 엿장수, 빵 장수 구경만 해도 좋아서 장을 몇 바퀴 돌아다녔다.
글을 쓰면서 그날들을 상상하니 너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새로운 것을 사게 되고, 평상시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는다는 그 설렘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지금 설을 앞둔 주부의 마음으로 설을 생각하면 설렘이 아닌 짜증이 먼저 밀려온다.
설 선물 준비와 설음식 준비에 바쁘다. 직장 일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니 그냥 이런 명절은 없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손꼽아 기다리던 설 명절이 이제는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니 너무 슬프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던 시절엔 이날만큼은 마음껏 먹고, 새 옷 입고 세배도 하며 돈도 모으는 재미가 좋았었다.
설날엔 늘 겨울 방학이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농한기였다.
동네마다 겨울 쌀 튀밥 과자를 만드는 행사가 기억난다. 우리 동네에서는 '오꼬시'라고 불렀다.
엄마가 그리 부르니 지금도 그렇게 명칭 하며 친정에서는 이렇게 부르며 먹는다.
겨울 간식거리는 고구마, 감, 곶감이 전부였다. 종종 쌀 튀밥과 떡 튀밥, 옥수수 튀밥도 바가지로 퍼다가 간식으로 즐겨 먹었다.
쌀 튀밥 과자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는 재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된다.
큰 솥을 뜨겁게 달구어 그곳에 물엿을 녹여 쌀 튀밥을 넣고 물엿에 섞는다. 그 섞은 반죽을 굳혀지기 전에 틀에 넣어 한 판씩 만들어 내면 다른 한쪽에서는 줄을 맞춰 자른다.
내 키만 한 비닐봉지에 한가득 담아놓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설날 부침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 전은 분홍색 소시지 전이었다. 지금 내 아이들은 붙여줘도 먹지도 않는 분홍색 소시지 부침개가 나의 설날 최애 음식이었다.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시절 큰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 분홍색 소시지 전은 제사상에 올리고 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먹고 싶어도 못 먹는 것을 아시고 명절 때만큼은 우리 4남매가 원 없이 먹을 수 있게 한 채반을 붙여주셨다.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분홍색 소시지 전은 우리 4남매에겐 특별한 음식이다. 그래서 지금도 명절에 분홍색 소시지 전을 조금 부쳐먹는다.
나의 설날의 추억들은 이렇게 풍족한데 내 자녀들을 보면 명절의 추억은 마음껏 핸드폰 하는 것이 추억인 듯하다. 친인척도 많지도 않고, 딱히 할 일도 없는 요즘 아이들은 명절에 자기 핸드폰이 뜨거워지고 배터리가 10% 남을 때까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명절에 이동하면서 짐을 챙길 때 핸드폰 충전기 콘센트 챙기는 것이 제일 우선이다.
과연 나 만큼 나이가 먹은 후 우리 애들은 명절의 추억을 무엇으로 기억할까? 나름의 추억이 있겠지만 액티비티 한 추억은 아닐 듯싶다. 내 추억은 좋은 것이고 너희들 추억은 별 볼일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설 명절이 다가와도 나의 어릴 적만큼의 설렘을 엿볼 수 없는 내 자녀들을 보니 심히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다.
풍족하면 우리는 소중함을 모른다. 결핍이 열정을 만든다고 했다.
말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지금의 상황이 우리 아이들의 명절 추억을 빼앗아 간 것 같아서 안타깝다. 제철 음식이 아니어도 살려고 하면 뭐든 살 수 있고, 마트에 가서 돈만 주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 지금 세상이 우리의 소중한 추억을 다 빼앗아간 느낌이다. 내가 설을 손꼽아 기다렸던 그 마음을 내 아이들도 내 조카들도 느끼면 좋겠다.
사람은 같이 어울려 살 때 사람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는 것보다 같이 먹을 때 더 맛이 있는 법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했다. 즐거운 추억이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하다.
나의 설렘 가득한 설처럼 우리 아이들도 설렘 가득한 설 이길 바라본다.
40대 중반을 넘어서 곧 50이 됩니다.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사는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글로 기록합니다.
중년을 위한 자기 계발서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