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인간'이라는 논리가 필요했던 순간"
1. 장면
라스콜니코프는 도끼를 든다. 전당포 노파를 향해. 그는 이 행위를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다만 '생각해 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그는 이 행위를 오래전부터 설명해 왔다.
살인 이전에 논문이 있었다.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는 논문. 범상한 인간과 비범한 인간. 비범한 인간에게는 기존의 법을 넘어설 권리가 있다. 나폴레옹이 그랬고, 역사를 움직인 모든 위인이 그랬다. 라스콜니코프는 도끼를 들기 전에 먼저 이 논리를 완성했다. 행위보다 설명이 먼저였다.
2. 명명
합리화. 프로이트가 말한 이 기제는 이름 그대로다. 이미 일어난, 혹은 일어나려는 충동에 합리적 이유를 덧씌우는 것이다.
합리화의 핵심은 순서의 전도에 있다. 정상적 과정이라면 이유가 먼저 있고 행동이 따라온다. 그러나 합리화에서는 충동이 먼저 있고, 이유가 나중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사후적 이유가 너무 정교하기 때문에, 당사자조차 이유가 먼저였다고 믿게 된다.
합리화가 다른 방어기제와 다른 점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억압은 침묵이고, 투사는 방향의 전환이지만, 합리화는 설명이다. 설득이다. 논리다. 그래서 지적인 사람일수록 합리화에 능하고, 합리화에 능할수록 자기기만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3. 독해
왜 합리화였을까. 라스콜니코프가 감당해야 했던 것은 두 가지다. 극심한 가난, 그리고 그 가난이 자기 존재 전체를 규정한다는 공포. 그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어머니와 누이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작동할 수 있는 방어기제는 여러 가지였다.
억압할 수 있었을까. 가난하다는 사실, 무력하다는 감각을 의식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너무 명석하다. 현실을 밀어내기에는 인지 능력이 지나치게 높다. 1편의 박완서 화자가 전쟁의 급박함 속에서 기억을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생존이라는 즉각적 과제가 의식을 점유했기 때문이다. 라스콜니코프에게는 그런 급박함이 없다. 오히려 그에게는 시간이 있다. 누추한 다락방에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가난의 현실을 매 순간 선명하게 자각할 수 있는 시간이. 억압은 이 선명함 앞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투사할 수도 있었다. 자신의 무력감을 노파에게, 사회에게, 체제에게 돌리는 것이다. 실제로 투사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파를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존재"로 규정하는 데에는 투사가 작동한다. 그러나 2편에서 보았듯, 투사는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지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투사는 상대를 미워하게 만들지만, 미움만으로는 살인까지 가지 않는다. 《날개》의 화자가 아내를 괴물로 만들었지만 아내를 죽이지는 않았듯, 투사만으로는 행위에 이르지 않는다.
반동형성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가난에 대한 수치심을 반대로 뒤집어 과잉 무관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나는 돈 따위에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5편에서 다룰 조덕기처럼.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격렬하다. 감정이 넘치고, 사유가 넘치고, 행동하려는 충동이 넘친다. 반동형성은 감정을 반대로 뒤집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라스콜니코프의 에너지는 반대 방향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치닫는다.
합리화가 선택된 이유는, 라스콜니코프가 행동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억압은 행동 이전에 멈추게 하고, 투사는 감정을 이동시키지만 행동의 논리를 제공하지 않고, 반동형성은 감정을 반대로 뒤집어 행동을 차단한다. 합리화만이 행동에 이유를 부여한다. "이것은 정당한 일이다"라는 문장은 합리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합리화가 작동하려면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1편에서 억압의 조건이 감정 처리의 시간 부재였고, 2편에서 투사의 조건이 지켜야 할 자기상이었다면, 합리화의 조건은 지적 능력이다. 논리를 구성하고, 선례를 찾고, 체계를 세울 수 있는 능력. 라스콜니코프는 이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바로 이 능력이 그의 함정이 된다. 명석한 사람의 합리화는 본인조차 속일 만큼 정교하기 때문이다.
라스콜니코프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전당포 노파는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존재다. 그녀의 돈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나는 가난한 어머니와 누이를 위해, 나아가 인류를 위해 그 돈을 쓸 수 있다. 따라서 이 살인은 산술적으로 정당하다. 논리 자체는 흠이 없어 보인다. 이것이 합리화의 무서운 점이다. 논리에 흠이 없다는 것이 그 논리가 진짜 이유라는 뜻은 아니다.
라스콜니코프에게 진짜 질문은 "노파를 죽여도 되는가"가 아니었다. "나는 비범한 인간인가"였다. 살인은 수단이 아니라 시험이었다. 자신이 특별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한 시험. 이것은 2편의 투사와 비교하면 구조가 선명해진다. 《날개》의 화자는 '천재'라는 자기상을 지키기 위해 무능의 원인을 아내에게 옮겼다. 라스콜니코프는 '비범한 인간'이라는 자기상을 증명하기 위해 살인의 정당성을 논문에서 가져왔다. 투사는 자기상을 지키기 위해 원인을 이동시키고, 합리화는 자기상을 증명하기 위해 행위에 논리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진짜 동기를 의식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특별한지 확인하고 싶어서 사람을 죽이려 한다"는 문장은 너무 적나라하다. 그래서 논문이 필요했다. 사회적 정의, 공리주의적 계산, 역사적 선례. 이 모든 것이 진짜 동기를 포장하는 합리화의 언어다. 2편에서 다룬 투사의 구조를 빌려 말하자면, 사실의 핵 위에 투사의 껍질이 씌워지듯, 충동의 핵 위에 논리의 껍질이 씌워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천재인 것은 살인 이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합리화가 성공했다면 라스콜니코프는 평온해야 한다. 자신의 논리대로라면 그는 정당한 일을 한 것이니까. 그러나 그는 무너진다. 열병에 시달리고, 사람들을 피하고, 범행 현장을 반복적으로 찾아간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살인 이후의 라스콜니코프에게 다른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범행 현장을 반복적으로 찾아가는 것은 12편에서 다룰 취소의 편린이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되돌리려는 상징적 행위. 열병은 15편의 신체화와 닿는다. 합리화의 언어가 무의식을 설득하지 못했을 때, 처리되지 않은 감정이 몸으로 내려간 것이다. 하나의 방어기제가 실패하면 다른 방어기제가 밀려온다. 합리화의 벽이 무너지자, 취소와 신체화가 빈자리를 메우려 한다.
소냐 앞에서 고백하는 장면은 합리화가 해체되는 순간이다. 소냐는 논리로 대응하지 않는다.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 있는다.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언어의 성채라면, 그 성채는 논리가 아니라 존재로 무너진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자리에서, 설명으로 지탱하던 모든 것이 내려앉는다.
이 장면이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 합리화하는 사람에게 논리로 맞서면, 합리화가 더 강해진다. 논리에 논리로 반박하면, 더 정교한 합리화가 돌아온다. 합리화의 성채는 논리의 무기로는 함락되지 않는다. 성채 밖에서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성채를 무너뜨린다. 소냐의 방식이 그것이다.
4. 돌아봄
우리가 어떤 결정에 대해 지나치게 긴 설명을 준비하고 있다면, 한 가지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이 설명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것인가,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것인가.
합리화의 신호는 정교함에 있다. 진짜 이유는 대개 짧다. "하고 싶어서." "두려워서." "사랑해서." 이 짧은 문장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긴 논리를 짓기 시작한다. 그 논리가 정교할수록, 그 아래 숨겨진 진짜 문장은 짧고 단순하다.
라스콜니코프의 논문 아래에는 한 줄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 이 한 줄을 견딜 수 있었다면, 도끼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합리화하는 캐릭터에게 세 개의 층을 설계할 수 있다. 첫째, 캐릭터가 말하는 이유. 둘째, 캐릭터가 모르는 진짜 이유. 셋째, 캐릭터의 말하는 이유가 설득력 있는 근거 — 2편에서 본 "사실의 핵"에 해당하는 것. 노파가 실제로 해악적 존재라는 사실, 사회가 실제로 부조리하다는 사실. 이 세 번째 층이 있어야 합리화가 독자에게도 먹힌다. 라스콜니코프의 논리가 독자를 잠시라도 설득하는 이유는, 노파가 실제로 탐욕스럽고 사회가 실제로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합리화를 뒷받침해 줄 때, 합리화는 가장 강력해진다.
그리고 합리화가 작동하려면 인물에게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1편의 억압이 감정 처리의 시간 부재를 조건으로 했고, 2편의 투사가 지켜야 할 자기상을 조건으로 했다면, 합리화의 조건은 논리를 세울 수 있는 지적 능력이다. 말을 잘하는 인물, 글을 쓰는 인물, 이론을 세우는 인물이 합리화의 적임자다. 역설적으로, 가장 똑똑한 캐릭터가 가장 깊은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합리화가 무너지는 장면을 쓸 때, 더 강한 논리로 무너뜨리면 안 된다. 소냐처럼, 논리 바깥의 존재로 무너뜨려야 한다. 합리화의 성채는 안에서 무너진다. 밖에서 공격하면 더 단단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