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괴물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

투사 — 이상, 《날개》

by 응시

1. 장면

'나'는 방 안에 있다. 아내는 바깥방에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문이 있고, 그 문은 아내만 연다. 나는 아내가 주는 밥을 먹고, 아내가 주는 아스피린을 먹고, 아내가 허락한 만큼의 세계 안에서 산다.

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아내에게 분노한다. 남편을 가두고, 약을 먹여 재우고, 자신의 수입원을 위해 남편을 방 안에 격리하는 여자. 화자 '나'도 그렇게 말한다. 아내는 자신을 지배하는 존재라고. 자신은 무력하고, 아내는 전능하다고.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아니면, 정말 그렇지 않은가. 이 소설의 진짜 긴장은 여기에 있다.

2. 명명

투사. 프로이트가 명명한 이 방어기제는 단순하다. 자기 안에 있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나 욕망을 상대방에게 옮겨놓는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미워하는 것이 되고, 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상대가 두려운 존재가 된다.

핵심은 방향의 전환이다. 감정은 존재하는데, 그 감정의 주체를 바꿔버린다. "내가 무능하다"는 문장을 의식이 견딜 수 없을 때, 마음은 그 문장을 뒤집는다. "아내가 나를 무능하게 만든다." 감정의 내용은 같은데, 화살표의 방향만 달라진다. 이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고통은 분노가 되고, 수치는 원망이 된다.

3. 독해

왜 투사였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 소설이 놓인 특수한 지형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이상은 자전적 작가다. 《날개》의 아내는 이상의 실제 동거인 금홍이를 모델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은 금홍이와의 관계에서 실제로 폭력을 경험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맞았다고. 이 사실은 소설 읽기를 복잡하게 만든다. 화자가 아내의 지배를 서술할 때, 그것이 전부 투사인가. 아니면 실제 경험의 반영인가.

정직하게 말하면, 둘 다다. 그리고 바로 이 '둘 다'가 투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투사는 허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투사는 현실의 일부를 확대하고, 재배치하고, 자기 필요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금홍이가 실제로 화자에게 폭력적이었을 수 있다. 경제권을 쥐고 관계를 지배했을 수 있다. 이 경험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자가 이 사실을 서술하는 방식에 투사가 작동한다. 아내의 지배력을 전능한 것으로 확대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절대적인 것으로 축소하는 것. 사실과 투사의 경계는 내용이 아니라 비율에 있다.

실제로 맞은 사람이 투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맞은 경험이 투사의 재료가 된다. 아내가 실제로 강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내 무능은 전부 아내 때문이다"라는 서술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현실이 투사를 뒷받침해 줄 때, 투사는 더 강력해진다. 13편에서 다룰 분열과 같은 구조다. 남한이 실제로 부패했을 때 이명준의 분열이 정당한 판단처럼 보이듯, 아내가 실제로 지배적이었을 때 화자의 투사가 정확한 관찰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를 함정에 빠뜨린다. 화자의 서술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그 서술을 전부 믿게 된다. 아내가 괴물이라는 화자의 말을. 그러나 서술 전체를 믿는 것과, 서술의 비율을 의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읽기다.

이제 왜 투사였는가를 물을 수 있다.

《날개》의 화자는 무능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방 안에서 아내가 가져다주는 것만으로 산다. 이 무능함 앞에서 마음이 선택할 수 있는 방어기제는 여러 가지였다. 억압할 수 있었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의식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의 상태를 아주 상세히 서술한다. 방의 크기, 일상의 패턴, 아내와의 관계. 기억을 밀어내지 않는다. 합리화할 수도 있었다. "나는 예술가이므로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실제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는 자기규정에 합리화의 냄새가 있지만, 이 합리화는 불완전하다. 화자 스스로 이 말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기색이 서술 곳곳에 드러난다.

화자가 투사를 선택한 이유는 자기상의 구조에 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 자기규정에는 두 개의 층이 있다. '천재'라는 과대한 자기상과, '박제'라는 무력한 현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화자의 핵심 갈등이다.

억압은 이 간극을 해결하지 못한다. 무능의 기억을 밀어내봤자, 방 안의 현실이 매 순간 무능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합리화도 완전하지 않다. "천재이므로 무능해도 된다"는 논리는, 천재라는 것을 증명할 무언가가 있어야 유지되는데, 화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투사가 유일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무능의 원인을 외부에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천재다. 다만 아내가 나를 가두고 있기 때문에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구조가 성립하려면 아내가 강력한 존재여야 한다. 아내가 무력하면 "아내 때문에 못한다"는 설명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아내를 전능한 존재로 만든다. 문을 여는 것도 아내, 밥을 주는 것도 아내, 약을 먹이는 것도 아내. 모든 통제권이 아내에게 있는 세계.

여기서 실제 경험과 투사가 뒤섞인다. 금홍이가 실제로 경제권을 쥐고 있었고, 실제로 화자에게 폭력적이었다면, 이 서술에는 사실의 핵이 있다. 그러나 화자가 이 사실을 자기 서사의 중심에 놓는 방식 — 아내의 지배력을 절대적인 것으로, 자기의 무력함을 필연적인 것으로 서술하는 방식 — 에 투사가 작동한다. 사실의 핵 위에 투사의 껍질이 씌워진 것이다. 핵을 부정할 수 없지만, 껍질의 두께를 의심할 수는 있다.

이것이 투사의 가장 교묘한 형태다. 완전한 거짓이면 반박할 수 있다. 완전한 사실이면 의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실과 투사가 뒤섞여 있을 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재구성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당사자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잔인하다. 화자는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 서서 "날개야 다시 돋아라"라고 외친다. 이 장면은 보통 각성과 해방으로 읽힌다. 그러나 투사의 구조 안에서 읽으면, 이것은 각성이 아니라 투사의 완성이다. 아내에게서 벗어나면 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순간이다. 금홍이의 지배가 실제로 있었다 해도, 그 지배에서 벗어나면 천재성이 날개처럼 돋아나리라는 믿음은 — 투사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무능의 전부가 아내 때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은 이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이 단순한 자기 연민의 서사가 아니라 한국 근대문학의 정전이 된 이유는, 화자의 서술을 그대로 믿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 서술의 균열을 곳곳에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사실과 투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것이 기법인지 고백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모호함 자체가, 투사라는 방어기제의 가장 정직한 초상이다.

4. 돌아봄

누군가가 유독 미울 때, 한 가지를 점검해 볼 수 있다. 내가 그 사람에게서 보는 것이 정말 그 사람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차마 나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인지.

그런데 이 점검은, 이 편이 보여주듯 단순하지 않다. 상대가 실제로 나에게 해를 끼쳤을 수 있다. 실제로 지배적이었을 수 있고, 실제로 폭력적이었을 수 있다. 투사를 의심한다고 해서 상대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사실이다.

문제는 비율이다. 상대가 실제로 60을 했을 때, 내 서술이 100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실제로 받은 상처 위에, 내 안의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얹어놓고 있지는 않은가. 투사의 핵심은 거짓이 아니라 확대에 있다.

《날개》의 화자가 아내의 지배력을 그토록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무기력을 그만큼 정밀하게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두 겹이 겹쳐 있을 때, 서술은 가장 설득력 있고, 동시에 가장 위험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구조를 캐릭터 설계에 활용할 수 있다. 투사하는 인물을 쓸 때, 상대에 대한 서술이 전부 거짓이면 독자가 빨리 알아차린다. 전부 사실이면 투사가 아니라 관찰이 된다. 가장 강력한 투사는 사실의 핵 위에 재구성의 껍질이 씌워진 형태다. 상대가 실제로 한 일이 있고, 그 위에 화자의 필요가 얹혀 있다. 독자는 사실의 핵 때문에 서술을 믿게 되고, 나중에 껍질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불편해진다. 이 불편함이 서사의 힘이 된다.

그리고 투사가 선택되려면, 인물에게 지켜야 할 자기상이 있어야 한다. 《날개》의 화자에게는 '천재'라는 자기상이 있었고, 그 자기상을 지키려면 무능의 원인이 바깥에 있어야 했다. 자기상의 형태가 방어기제를 결정한다. 자기상이 없는 인물은 투사할 필요가 없다. 지킬 것이 없으니까. 투사하는 캐릭터를 만들 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인물이 지키려는 자기상이 무엇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