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방에는 자리가 있었다.
가운데, 그 옆, 그 바깥. 빛이 닿는 자리와 닿지 않는 자리. 이 자리 배치는 기생의 값으로 정해졌다. 가장 비싼 기생이 가운데 앉았다. 가장 싼 기생이 가장자리에 앉았다. 이것을 끝자리라고 불렀다.
끝자리에 앉은 기생은 어떤 처지였을까.
조선 후기 관허 기방의 구조를 보면, 기생의 수입은 '화대'로 결정됐다. 화대는 손님이 기생을 지명할 때 지불하는 돈이다. 기방 주인(행수)이나 중간 관리인(두억)이 일정 비율을 가져가고, 나머지가 기생에게 돌아갔다. 비율은 기방마다 달랐지만, 대체로 기생이 가져가는 몫은 전체의 3분의 1 이하였다.
문제는 화대가 고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명 횟수에 따라 값이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했다. 인기 있는 기생은 값이 올랐다. 인기 없는 기생은 값이 내렸다. 값이 일정 기준 아래로 떨어지면 기방에서 퇴출됐다. '보름에 다섯'이라는 기준이 통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보름 동안 다섯 번 이상 지명을 받지 못하면 자리를 잃었다. 기방에서 나간 기생은 어디로 갔을까. 기록이 없다. 사라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인기'의 기준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외모나 재능만이 아니었다. 승정원일기와 각종 야담집을 보면, 양반이 기생을 지명하는 이유에는 정치적 계산이 섞여 있었다. 특정 기생을 불러 대접하는 것이 상대 양반에 대한 예의였고, 특정 기생을 피하는 것이 정치적 신호였다. 기생의 '인기'는 기생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기생 주위를 도는 권력의 흐름이 결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끝자리에 앉은 기생은, 재능이 없어서 거기 앉은 것이 아닐 수 있다. 권력의 흐름에서 밀려난 것이다. 권력이 바뀌면 자리도 바뀐다. 끝자리에 앉았던 기생이 가운데로 올 수 있고, 가운데 앉았던 기생이 밀려날 수 있다.
끝자리는 마루의 가장자리다. 등잔 빛이 닿지 않는 쪽이다. 거기 앉으면 다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만 자기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의 눈에 들지 않는 자리. 그러나 손님을 볼 수 있는 자리.
나는 최근 순조 12년(1812년)의 기방 구조를 추적하고 있다. 세도정치가 본격화되는 시기다. 안동 김 씨가 권력을 잡고, 정치적 편 가르기가 기방의 손님 구성까지 바꿨다. 특정 양반이 특정 기방에 가는 것 자체가 정치적 신호였다. 기방은 유흥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네트워크의 교차점이었다.
이 교차점에 앉아 있던 기생은 무엇을 봤을까. 누가 오고 누가 안 오는지. 누가 누구와 같이 오는지. 누구의 이름이 나올 때 목소리가 낮아지는지. 기생은 이 모든 것을 봤을 것이다. 듣기 전에 봤을 것이다.
그런데 봤다는 기록이 없다.
역사는 움직인 사람을 기록한다. 황진이는 움직였다. 논개는 움직였다. 기록됐다.
끝자리에 앉아 있던 기생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읽고도 움직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등잔 빛이 닿지 않는 마루 가장자리. 나무가 차갑고, 어둡고, 조용한 그 자리. 거기에 앉아 있던 사람의 눈에 무엇이 비치고 있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