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리 한 벌의 무게

순조 12년, 1812년.

by 응시

기방의 기생이 새 저고리를 받았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저고리 한 벌의 경제적 무게를 알아야 한다. 조선 후기 면포 1 필의 가격은 대략 쌀 서너 되 값이었다. 명주는 그 두세 배. 기생이 입는 저고리는 면이 아니라 명주였다. 깃과 고름의 마감, 솔기의 처리, 실 끝의 방향 — 이 모든 것이 그 기생의 '값'을 드러냈다.


옷은 신분의 표지였다. 법적으로 기생은 천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기생이 입는 옷은 양반 부인의 옷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화려한 경우도 있었다. 이 모순은 기방의 경제 구조에서 나온다. 기생의 외모가 곧 기방의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기방 주인은 기생에게 좋은 옷을 입혔다. 투자였다.


그런데 그 옷은 기생의 것이 아니었다.


기방을 떠나면 옷도 두고 가야 했다. 옷은 기방의 재산이었다. 기생의 몸에 걸쳐져 있었을 뿐, 소유는 기방에 있었다. 이것은 현대의 회사 유니폼과 비슷하다. 입고 있는 동안은 내 것 같지만, 떠나면 반납해야 한다.


자기 옷을 가진 기생은 드물었다. 자기 돈으로 옷을 사려면 화대에서 자기 몫을 모아야 했는데, 기방비, 식비, 잡비를 제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기생의 경제적 자유는 사실상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새 저고리를 건넨다면, 기생은 무엇을 느꼈을까. 감사? 부담? 경계? 아마 셋 다였을 것이다.


게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 경계다.


옷을 받는다는 것은 관계가 생긴다는 뜻이다. 관계가 생기면 기대가 생긴다. 기대가 생기면 의무가 생긴다. 저고리 한 벌은 그냥 천 조각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끈이다.


조선 후기 첩 제도를 보면 이 구조가 더 분명해진다. 권력자가 기생에게 옷과 집을 제공하고 첩으로 삼는 것은, 경제적 보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옷을 받고, 집을 받고, 밥을 받으면 — 떠날 수 없다. 경제적 의존이 물리적 구속이 된다.


저고리 한 벌의 무게는 천의 무게가 아니다. 관계의 무게이고, 의무의 무게이고, 자유의 무게다.


조선의 여성은 이 무게를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몸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새 저고리를 받았을 때 손이 먼저 느끼는 것 — 천의 매끄러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끈의 무게.


이것은 조선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의 여성도 비슷한 무게를 안다. 선물을 받으면 관계가 생긴다. 관계가 생기면 기대가 따른다. 기대를 저버리면 비용이 발생한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경제적 의존이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구조는, 조선의 첩 제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내가 조선의 저고리를 쓰는 이유는 과거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현재의 구조를 더 분명하게 보기 위해서다. 200년 전의 사례는 감정적 거리를 준다. 감정적 거리가 있으면 구조가 보인다. 구조가 보이면 지금 내 자리도 보인다.


기방의 기생이 새 저고리를 받았을 때, 그 기생은 세 가지를 동시에 계산했을 것이다. 이 옷의 값. 이 관계의 값. 이 관계를 거절할 때의 값. 세 가지 값이 모두 보이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이란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다. 거절하는 것도 선택이다. 그리고 거절에는 항상 가격이 붙는다.


조선의 기생은 그 가격을 알고도 거절할 수 있었을까. 기록에는 없다. 기록에 없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뜻은 아니다.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기록되지 않은 거절을 쓴다. 저고리 한 벌의 무게를 알면서도 그것을 접어서 벽 옆에 놓아둔 여성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