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 뒤에 있는 손
왕의 밥상에는 열두 가지 반찬이 올라갔다.
십이 첩 반상. 밥, 국, 찌개, 김치, 장류를 제외하고 열두 가지.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 두 번. 여기에 낮것상(점심), 야참(밤참)이 더해졌다. 왕이 하루에 먹는 음식의 가짓수는 수십에 달했다.
이 음식을 만드는 곳이 수라간(水刺間)이었다.
수라간에는 최소 수십 명의 인력이 있었다. 주방 상궁이 총괄하고, 나인들이 조리를 맡았다. 불을 때는 사람, 물을 긷는 사람, 재료를 다듬는 사람, 간을 보는 사람.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었다. 한 사람이 여러 일을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했다.
파를 써는 사람은 평생 파를 썰었다.
이것이 과장이 아니다. 궁중 음식의 핵심은 일관성이었다. 왕의 입맛은 바뀌지 않아야 했다. 오늘의 김치가 어제의 김치와 같아야 했다. 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같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같은 일을 해야 했다. 사람을 바꾸면 맛이 바뀌었다. 맛이 바뀌면 왕이 알아챘다. 왕이 알아채면 문제가 됐다.
그래서 수라간의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 자리가 고정됐고, 역할이 고정됐고, 동작이 고정됐다. 이것은 5편에서 다룬 침방의 반복 노동과 같은 구조다. 다만 침방은 바늘이었고, 수라간은 칼이었다.
수라간의 노동에서 특이한 것은 음식이 완성된 뒤에 일어나는 일이다.
음식이 완성되면 상궁이 확인했다. 확인이 끝나면 기미(氣味)를 봤다. 기미란 독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궁녀가 먼저 맛을 봤다. 왕에게 올리기 전에 궁녀의 입을 거친 것이다. 이것은 궁녀에 대한 신뢰가 아니었다. 궁녀의 몸을 검증 도구로 사용한 것이었다.
음식을 만든 사람이 먼저 먹어서 안전을 증명하는 구조. 이것은 수라간 궁녀의 몸이 왕의 안전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뜻한다. 1편에서 궁녀의 몸이 제도에 속한다고 했다. 수라간에서는 그 속함의 형태가 가장 구체적이다. 몸이 도구가 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다.
수라가 왕 앞에 놓이면 수라간의 역할은 끝났다. 왕이 수저를 들면 그것은 왕의 식사였다. 수십 명이 새벽부터 만든 음식이지만, 먹는 순간 그것은 왕의 것이었다. 만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현대 심리학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라는 개념이 있다. 결과는 보이지만 과정은 보이지 않는 노동. 집안일이 대표적이다. 깨끗한 집은 보이지만, 청소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은 보이지만, 요리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결과만 소비되고, 과정은 소비되지 않는다.
수라간의 노동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왕은 매일 수라를 먹었다. 맛있으면 아무 말하지 않았다. 맛이 없거나 문제가 있을 때만 말이 나왔다. 잘했을 때 인정받지 못하고, 못했을 때만 벌 받는 구조. 이 구조가 수십 년 반복되면 사람 안에 무엇이 남을까.
인정의 부재가 남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 있다는 감각이 외부에서 오지 않으면, 그 감각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버틴다. 만들 수 없는 사람은 무너진다. 수라간에서 수십 년을 버틴 상궁은 스스로 만들 수 있었던 사람일 것이다.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사람의 기록은 없다.
수라간의 기록은 음식을 남겼다. 궁중 음식의 레시피, 재료의 목록, 상차림의 배치. 이것들은 남아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있다.
음식은 남았다. 음식을 만든 손은 남지 않았다.
우리는 궁중 음식을 문화유산이라고 부른다. 그 문화유산을 만든 사람의 이름은 하나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