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이 없어도 나갈 수 없는 삶
궁녀는 궁 밖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알았다가 잊었다. 네다섯 살에 입궁한 궁녀에게 궁 밖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다. 열 살이 되면 흐릿해지고, 스무 살이 되면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서른이 되면 궁 밖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어졌을 것이다.
궁녀의 외출은 극히 제한됐다. 부모의 상(喪)이 있을 때, 본인이 중병에 걸렸을 때. 이 두 경우를 제외하면 궁 밖을 나갈 이유가 없었고, 나갈 허락도 없었다. 궁의 담은 물리적 경계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경계였다.
혼인도 금지됐다. 궁녀는 왕의 사람이었다. 왕의 사람이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것은 성적 통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격리였다. 혼인이 금지되면 가족을 만들 수 없다. 가족이 없으면 궁 밖에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갈 곳이 없으면 떠날 이유가 없다. 떠날 이유가 없으면 궁이 전부가 된다.
이 구조를 정면으로 보아야 한다.
궁녀의 입궁은 형식적으로는 자발적일 수 있었다. 가족이 동의하고, 궁에서 받아들이는 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나가는 것은 자발적이지 않았다. 들어가는 문은 열려 있었으나 나가는 문은 닫혀 있었다. 들어갈 때는 선택이 있었으나 나갈 때는 선택이 없었다.
기생 시리즈 3편 "저고리 한 벌의 무게"에서 다뤘던 구조와 같다. 저고리를 받는 것은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받고 나면 벗을 수 없었다. 경제적 의존이 물리적 구속이 됐다. 궁녀의 입궁도 같은 구조다. 들어가는 것은 선택처럼 보였다. 들어간 뒤에는 나올 수 없었다. 소속이 구속이 됐다.
현대 심리학에서 '제도적 감금'이라는 개념이 있다. 감옥처럼 물리적으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구조가 사람을 가두는 것이다. 떠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법적으로 금지하고,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하고, 사회적으로 돌아갈 곳을 없앤다. 세 가지가 겹치면 담이 없어도 갇힌다.
궁녀는 이 세 가지가 모두 겹친 사람이었다.
외출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경제적으로 궁에 의존했다. 궁 밖에 가족도, 집도, 돌아갈 곳도 없었다. 담이 있었지만, 담이 없어도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궁 안에서 평생을 산 궁녀에게 궁은 무엇이었을까.
집이었을까. 집이라면 편안해야 한다. 궁녀에게 궁이 편안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감옥이었을까. 감옥이라면 나가고 싶어야 한다. 궁녀가 나가고 싶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나가고 싶으려면 밖을 알아야 한다. 밖을 모르는 사람은 나가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할 수 있다.
이것이 제도적 감금의 가장 깊은 층위다. 갇혀 있다는 인식 자체가 사라지는 것. 밖을 모르면 안이 전부가 된다. 전부인 곳에서는 갇혀 있다는 느낌이 생기지 않는다. 느낌이 없으면 저항도 없다. 저항이 없으면 제도는 완성된다.
궁녀가 궁 안의 삶에 만족했을 수도 있다. 불만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족과 불만 모두 비교가 있어야 가능하다. 비교 대상이 없는 사람의 만족은 만족이 아니라 무지다. 무지한 상태의 평온은 평화가 아니라 부재다.
궁 밖을 아는 궁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늦은 나이에 입궁한 궁녀, 밖의 기억이 선명한 궁녀. 그 궁녀에게 궁은 달랐을 것이다. 비교 대상이 있으므로. 밖을 아는 사람에게 안은 감금이다. 밖을 모르는 사람에게 안은 세계다.
같은 궁궐에 살면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기록은 이 차이를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