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쉽게 만들지 않기로 한 날들

오래 남는 작업을 선택한 작품

한지와 함께한 시간이 24년이다.

어느 날, 나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작은 약속을 했다.


쉽게 만들지 않겠다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끝이 더 바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도,

오래 남는 쪽을 선택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지꽃이 피었습니다 한지인테리어 벽장식 거울

쉽게 만드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문양을 줄이고, 색을 단순하게 하고,

과정을 생략하면 더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더 많이 만들 수 있었고, 더 쉽게 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작품 앞에 서면,

마음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잘 만들었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불편한 쪽을 선택했다.


시간이 더 걸리고,

손끝이 더 바쁜 방식,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방식.

누군가는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조금만 덜어내도 충분할 텐데요.”


그럴 때마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말로는 단순하지만,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이유였다.


나는 눈에 보이는 작품보다,

마음속에 오래 남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어렵게 찾아낸 과정을

혼자만 알고 싶지 않았다.


내 고민과 시행착오가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쉬운 길이 되기를 바랐다.

100% 수작업 종이로 만든 한지 거울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셀 수 없는 망설임과, 숱한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그 과정을 지나 세상에 나온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시작할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나는 어렵게 만들되,

회원들은 쉽게 배울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걸어온 길을 굳이 다시 걷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다.


작품이 완성되어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을 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손끝의 숨결이 조용히 전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 작은 치유가 되고,

조용한 힐링이 되기를 바랐다.

내가 만든 작품이 그들의 하루에 놓인

작은 선물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빨리 끝낼 수 있는 일과,

오래 남을 수 있는 일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선택했는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쉽게 만들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날부터

작업은 더 고단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능이 아니라, 이 선택 덕분이었다.


오늘의 문장

쉬운 길을 알면서도, 나는 오래가는 길을 택했다.

한지꽃이 피었습니다 나주공방

다음 화는 손으로 여기까지 왔다-취미가 생업이 되기까지의 장면들로 찾아뵐게요


오늘도 함께 동행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