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있는 하루는 다르다
오래 하다 보면
흔들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시간이 쌓일수록 흔들리는 순간도
함께 늘어난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 때문에 흔들렸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알기 때문에 흔들리게 된다.
이 길이 맞는지, 지금 선택이 맞는지,
더 나은 방법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쉽게 기울어진다.
공방을 운영하며
나 역시 수없이 흔들렸다.
방향을 바꿔야 할 것 같던 날,
다른 선택이 더 좋아 보이던 날,
지금까지의 시간이
틀린 것처럼 느껴지던 날.
그럴 때마다 나는 멈춰 서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정리해 주었다.
처음 한지를 만졌을 때의 마음,
처음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기쁨,
누군가와 함께 만들며 느꼈던 따뜻함.
그 순간들은 결코 흔들리고 있지 않았다.
흔들리고 있던 건 결과였고,
속도였고, 비교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기준을 정해 두었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오는 기준.
“내가 지키고 싶은 방식인가.”
이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 더 빠른 길이 보여도
내 방식이 아니라면 선택하지 않았고,
조금 더 많은 결과가 보일 것 같아도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멈췄다.
그 선택들은
당장은 느리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를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24년 동안 내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도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이 단순한 기준을 놓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방은 작품만으로 유지되는 공간이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기준으로 이 공간을
지켜가는지가 결국 공방의 분위기를 만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무엇을 이루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결과보다
기준을 먼저 생각한다.
얼마나 잘되었는지보다
어떻게 해왔는지를 돌아본다.
문득 깨닫게 된다.
기준이 없는 노력은 쉽게 흔들리지만,
기준이 있는 하루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기준이 없어서 더 흔들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약 지금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기보다
하나를 정해 보는 것이 좋다.
내가 지키고 싶은 방식,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가치.
그 하나가 생각보다 긴 시간을 붙잡아 준다.
오늘의 문장
흔들리는 순간마다,
나는 기준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익숙한 작업대 앞에 앉아 한 장의 한지를 펼치고
내가 지켜온 방식대로 다시 손을 움직인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내 기준으로 쌓인 시간은
결국 나를 가장 멀리 데려간다.
다음 11화는 그만두고 싶었던 날들에 대해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오늘도. 함께 동행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