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설계한 하루, 가장 소중한 시간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선택
[일보다 아이 먼저라는 말 앞에서]
일하는 걸 반대하는 남편, 아이 키우는 일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라는 시선. 마찰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공방을 오픈했다.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무모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우리 가족에게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었다.
[미안함으로 시작된 하루]
아이와 함께 일 한다는 건 늘 무엇 하나는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내야 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잘 돌봐야 하고, 일도 놓지 말아야 하니까요.”
그 말은 자꾸만 내 마음 한쪽을 무겁게 만들었다.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 같았으니까.
[두 평 남짓, 아이의 작은 공간]
공방 한 켠 두 평 남짓한 공간. 작은 놀이 매트를 깔고 아기 이불과 장난감 몇 개를 놓았다. 나는 그 옆에서 수업을 했다. 때로는 품에 아이를 안고 작업을 이어갔다.
수강생들에게도, 아이에게도‘미안해’라는 말을 삼켜야 했던 시간. 눈빛 하나, 울음 한 번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
그렇게 버티던 어느 날, 내 마음에 조용히 한 문장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나에게서 어떤 모습을 보고 자라날까?’
완벽하게 놀아주지 못해 미안했고, 항상 집중해주지 못해 또 미안했지만 어쩌면 아이는 이렇게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구나.”
[엄마의 일터, 아이의 놀이터]
회사에 다닌다면 아이 손을 놓고 달려 나갔어야 했겠지.
나는 그 대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내가 꿈꾸는 삶을 지켜보기로 했다.
강의 중간에 아이가 울면, 나는 주저 없이 강의를 멈추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작업을 멈추고 눈을 맞추며 한참을 안아줬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것이 내가 버텨내야 하는 방식이야. 나의 일터이자, 아이의 놀이터.”
[서로를 키워낸 시간]
일과 육아는 서로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숨이 되어주는 일이었다.
나는 일을 하며 아이를 키웠고, 아이를 품으며 내 삶을 다시 키워냈다.
[18개월의 출근길]
18개월 동안, 아이와 나는 매일 공방에 함께 출근했다.
틈틈이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웃음을 나눴다. 그 시간을 버텨낸 끝에 공방이 있는 상가 건물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보낼 수 있었다.
“잘 다녀와.”처음으로 아이 눈을 마주 보며 그렇게 말했던 날, 나는 눈이 시리도록 고마웠다.
[지금, 그 시간들을 꺼내보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얼마나 고되고
불안했는지 안다.
하지만 공방 속 사진 한 장 한 장을 꺼내 볼 때마다
나는 미소를 짓는다.
“우리 딸, 엄마가 만든 작품 속에 쏙 들어가 있네.”
그 한마디에, 지난 시간들이 온통 꽃처럼 피어난다.
[함께 자라난 오늘]
지금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된 딸들.
엄마의 하루를 지켜보며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해 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조용히 마음으로 감사한다.
오늘의 문장
나는 아이를 키우며 일했고, 일을 하며 내 삶을 다시 키워냈다.
다음 회차 7화. 공동구매로 월급을 넘다 “돈이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돈은 나에게 ‘계속해도 괜찮다’는 용기가 되어주었다.” 로 찾아뵐게요
오늘도 함께 동행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