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신라호텔 결혼식
엄마는 내가 제약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아픈 건 내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게 사실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픈 게 이토록 괴로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면 건강을 최우선으로 뒀을 텐데.
허리를 다친 건 신림 집에서였다. 내 키에 맞지 않는, 낮은 사무용 책상을 집에 들여서이다. 키가 180cm가 넘는 내가 반 눕듯이 앉아야 키보드를 간신히 칠 수 있는 책상이었다. 그 책상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허리춤에 뚝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다리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왼쪽 다리가 마비된 거마냥 다리조차 들기 어려운 통증이었고, 잠도 뜬눈으로 매일 밤마다 지새웠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차마 본가로 돌아갈 생각은 안 했다.
따로 살기 전 나는 엄마한테 커밍아웃했다. 내가 게이라고 밝혔을 때, 엄마는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는 내가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지 않고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내가 그런 인생을 살 거면 가족이랑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엄마가 선택한 삶은 사랑 없는 삶이다. 엄마와 아빠는 어렸을 적부터 사이가 안 좋다. 서로 중매로 만난 사이인데, 아빠는 나나 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병원에 오지 않고 골프 치러 갔다고 한다. 처음부터 케미가 안 맞았던 모양인데, 궁극적으로 사이가 틀어진 건 아버지가 엄마에게 성병을 옮겼을 때가 아니었지 싶다. 정기 건강검진에서 엄마는 HPV 양성이 나왔다.
자칫하면 자궁경부암이 될 수 있어서 온갖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아빠는 외도하지 않았다고 시치미 뗐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가세하여 HPV는 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생길 수 있는 병이라고 했다. 엄마 말로는 이건 다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HPV는 피부 세포막이 뚫려야지만 전염될 수 있는 병이라 단순 접촉으로는 전염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겉 알맹이만 의사이지 초등학생과 다름없는 사람이다. 의사 부모 아래서 자라서 부모가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부모에게 투정 부렸다. 자기가 병을 옮겨놓고 대응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시켰다.
이 둘을 지켜보면서 컸던 나는, 사랑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쉰 넘어서 아버지가 우울증에 걸려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잠만 자려고 했을 때, 엄마는 아버지 곁을 지키지 않았다.
남편이 정신과 약을 과다 복용을 해도, 약을 술과 섞어 마셔도, 엄마는 매일 빠짐없이 출근한다. 아버지가 심각한 우울증을 겪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는 약과 술에 취해 하루 20시간 이상을 침대에서 보낸다. 엄마는 진료실에서 진찰받는 아이 중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는 한눈에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서 자랐기 때문에 사랑할 줄 모른다고 했다.
본인의 결혼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내가 언젠가 결혼할 거라고 믿었다. 내가 허리를 처음 다쳤을 때, 엄마는 혼자 나가서 살아서 아픈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보고 여자랑 결혼하거든 나가 살라고, 당장 본가에 돌아올 것을 종용했다.
허리가 안 나아서 한두 달 본가에 들어가서 살았는데, 엄마는 퇴근 후 본인 지도하의 운동을 매일 한 시간씩 강요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 해부학 강의를 해댔는데, 한번은 사타구니에 있는 치골근을 풀어준답시고 저녁 식사 도중 내 사타구니를 강제로 잡기도 했다.
내게 온갖 처방을 하기 바빴던 엄마였지만, 자기 근무 스케줄과 겹치는 내 치료 일정은 3년 넘게 단 한 번도 동행한 적이 없다. 처음에는 혼자 가는 병원 진료가 대수롭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병원 진료에 가족이 동행하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외할아버지가 죽기 전 엄마는, 돌보는 일은 남에게 돈 주고 시키면 되는 일이라 했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며, 엄마는 축의금으로 뿌린 돈이 많기 때문에 내 결혼식은 신라호텔에서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자, 엄마는 마지못해 조선호텔에서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엄마의 바람대로 신라호텔 결혼식은 성사되었다. 나보다 3살 어린 여동생이 카자흐스탄 고려인 남자친구와 결혼한다고 했다. 식장은 신라호텔 영빈관으로 정해졌으며, 주례는 신랑 신부와 일면식 없는 아버지 의대 교수로 선정되었다. 내 병원 진료는 단 한 번도 올 여유가 없었던 엄마는 식장 예약서부터 하객 관리까지 동생 결혼식은 물심양면 도와주는 듯했다.
아버지는 결혼식 전날에도 만취해서 결혼식에 못 올 듯했지만, 다행히 취한 몸을 이끌고 식에 왔다. 아버지는 몇 달 전부터 본인이 바이올린 축하 연주를 해야겠다고 신랑 신부에게 강요해, 유치원생 수준의 불협화음 가득한 축하 연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버지의 퍼포먼스가 끝나자, 아버지 지인 울산의대 신경외과 김정철 교수가 나한테 다가와 아직도 허리가 아프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의사를 불신한다고 들었다며, 의사 말을 무조건 맹신해야 한다고 여러 번 내게 되뇌고 자리를 떴다. 엄마 옆에는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앉았는데, 언뜻 보기에 보험설계사나 다단계 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초면인 내게 대뜸 엄마가 권하는 마사지 관리사한테 왜 가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엄마는 자기 아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사람인지 여자에게 푸념했다.
그때, 동생과 신랑이 하객 앞에서 춤을 추는 순서라고 사회자가 발표했다.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동생과 신랑이 무대 위에 올랐다. 춤추는 동생과 신랑을 뒤로하고 나는 식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