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영하 10도를 오가는 날씨
결혼식 이후, 나는 다시 한번 대학병원에서 경막외 신경 차단술을 받기로 했다. 종전에 같은 치료를 받고 나서 대소변 조절을 못 하고, 대상포진까지 생긴 경험이 있어서 겁이 났다.
룸메나 누군가가 같이 병원에 동행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부담될까 봐 그런 부탁은 못 했다. 대신 룸메에게 내가 치료받는 날 집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룸메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할 무렵이라, 집에서 재택근무하고 있었다. 집에 있으면서 시술 차도를 봐주고, 혹시나 응급실 갈 일이 생기면 룸메가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룸메는 당연히 집에 있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 당일 아침, 병원 갈 준비를 하는데, 룸메는 갑자기 회사로 출근할 일이 생겼다고 했다. 치료받으러 가기 직전이라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룸메에게 집에 최대한 빨리 돌아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룸메는 빨리 돌아오도록 노력하겠다며 회사로 출근했다.
치료받고 오후 2시, 나는 허리가 얼얼한 채 뒤뚱뒤뚱 걸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룸메는 집에 없었고, 나는 룸메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렸다. 룸메는 그날 저녁 12시가 돼서야 술에 찌든 채 집에 돌아왔다. 나는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냐고 룸메에게 따졌는데, 룸메는 회사 동료들이 술 마시자고 붙잡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 치료 잘 받았냐고 물었다.
며칠 뒤, 나는 룸메에게 대림역에 있는 양갈비 집에 가자고 말했다. 내가 치료받는 날에 룸메가 집에 있어 주지 못해서 속상하다고 룸메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양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편식이 심한 룸메가 잘 먹는 양갈비 앞에서 얘기를 꺼내면 대화하기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본인이 미안해하는 내색이라도 했다면 말을 꺼내기 쉬웠을 텐데, 룸메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양고기를 처먹었다. 나는 식사 후 산책하면서 얘기 나누자고 말했고, 우리는 대림역 인근을 산책했다.
영하 10도를 오가는 날씨라 해는 일찍 저물고 인적은 드물었다. 가로등 빛이 잘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골목에 들어섰는데, 룸메는 대림이 우범 지대이지 않냐고 물었다. 주사 치료를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나는 뒤뚱뒤뚱 불안한 걸음을 옮기는데, 룸메는 어둠 속을 바라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 Don’t expect me to save you. You can run, right?
(내가 널 구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마. 뛸 수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