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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Nov 25. 2020

왜 항상 전남친은 내가 다 잊은 다음 연락이 올까?

찌질하게 연락을 주고받아도, 지지부진한 우리 사이

네 연락을 바라지않았다. 이젠 나는 너 없이도 그럭저럭 살만하고, 언젠가 너의 이름이 들려올 때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넌 흔한 이름이었으니까. 의식해서 주의 깊게 생각해야만 너와 내가 전에 연애를 했던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근데, 그런 네게서 연락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네게 이래서 저래서 미안해'….
좀 더 뻔뻔한 버전도 있다. '잘 지내?'


바랐을 때가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너의 연락만을 기다렸던 때가 있었다. 핸드폰 전원 버튼만 눌렀다 껐다 했으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찾아다녔다. 네 직업, 네 학교, 네 이름, 내가 아는 네 흔적 전부를 고루고루 헤집었다. 혼자 찌질찌질대면서도 너에게 절대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네게서 바랐었던 연락이 왔는데, 난 헤어진 그 날로 끌어 내려졌다. 어둡고 앞이 안보이던 때와 장소로. 분명 날아갈 듯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난 네 연락을 받을 때마다 버림받았던 때로 돌아간다. 비참하게 서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답장을 한다. "응 오빠는?"  


넌 모든 것을 믿었던 내게 잠수 이별로 답했다. 네가 일전에 연애하던 사람과 다시 사귀는 걸 알게 됐다. 사랑받는 연애만 해오던 내게 너의 진실은 충격이었다. 내가 알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 제일 힘들었다. 너는 내게 묵묵하고 솔직한 사람이자 진중한 사람이었다. 아픈 연애를 했다는 너의 고백이 어쩌면 내게 큰 믿음을 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과 잘 안되거나, 혹은 헤어졌을 때 그에게서 어김없이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고. 꼭 내가 잘 지낼 때 연락하더라. 아니, 막 잘 지내게 됐을 때. 어디 감시라도 하는 거니? 그런 네게 대답할 때 까지는 정말 '잘 지내' 그 자체였는데, 대답 후 기다리는 나는 '못 지내'를 다시 쓰고 싶은 심정으로 돌아갔다. 널 계속 기다리기만 하던 그때로.


왜 항상 너는 내가 다 잊을 때쯤 연락을 하는 걸까



 그건 아마, 내가 이제  위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  좋게 생각하지도, 나쁘게 생각하지도, 떠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떠올리지 않고 너를 위해 나의 타는 젊음과 애타는 마음을 바치지 않기 때문이다.  삶에서 조금씩 지워지는 , 네가 아는 거다. 남자 친구  했다고.


  너에게 시간을 쓰지 않자 그제야 너는 내게 시간을 썼다.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자 너는 나를 갑자기, 떠올렸다.


  우리 둘이 지켜야 내야 할 추억의 몫을, 그간 나는 혼자 책임졌다. 내가 그를 지켜내려 아등바등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는  더 이상 쏟을 힘이 없어지자, 그 추억은 오로지 네 빚으로 남아 갑자기 네게 들이닥쳤을 거다. 당황스러웠겠지, 놀랐겠지. 어디서 이런 생각이 자꾸 쏟아질까 겁이 났겠지. 고민을 하다, 혹은 한번 툭 하고 내게 힘듦을 토로한 거겠지.


너 어디 갔어? 내 건 네가 책임져야지  



  소리쳐봤자다. 그리워했던 나의 인연아. 나는 이제 빠지려고. 이젠 힘들고 싶지 않아. 나는 그동안 너무 힘들고 너무 외로웠거든. 나는 서서히 침잠하면서 추억을 굴리고 굴리고 또 굴렸어. 그 빚에는 나의 자책과 슬픔과 괴로움, 너의 환상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이제 너는, 너 혼자 그걸 떠안고 살아.


  너와 이별하고 나는 아픔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외로움을 잘 다스리는 데만 꼬박 몇 개월을 썼다. 배울 때를 놓친 너는, 아마 좀 힘들겠지. 처절하게 외롭고 처절하게 힘들길 바란다. 그래도 나의 아픔에, 나의 당혹에 발 끝만큼도 못 미칠 테니까. 너에게 줄 남은 내 감정이 이제 없음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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