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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Nov 28. 2020

기분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사람

싫은건 싫은데 어쩌냐고요

 참 쉽다. 주변인의 내 기분 맞추기는 기상청의 날씨 맞추기보다 확률 높을거다. 내가 표정으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눈을 번쩍 뜨고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입을 우엑 벌린다. 예로부터 감탄고토라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어쩌면 옛 선인들이 미래의 날 보고 만든 말인지도 모르겠다. 난 좋고 맛있는 건 잘 삼키고 혀가 쓰고 아리면 잘 뱉는다.


 비단 음식뿐만 아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마주했을 때 나는 쉽게 내 감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해 특별한 생각 없이 살아왔다. 언젠가 나도 낯설고 나를 낯설어하던 어떤 이는 내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신기하댔다. 계속 보고 싶고 궁금하댔다. 그럼 좋은 거네! 처음으로 인식한 나의 모습을, 계속 고수해도 괜찮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곧잘 해부되던 나의 마음에도 안심해버렸다.




표정 정말 잘드러내는데~ 글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



 문제는 대학 졸업부터.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양껏 하는 감정 표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회인이 되자마자 내 표정은 문제가 됐고 때로는 문제의 여지가 됐다.


 한 번은 일과 중에 달갑지 않은 연락을 받았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던 이가 대수롭지 않게 날린 단문의 카톡. 오전에 받았던 카톡은 머릿속에서 눌러앉아버렸다. 그날, 나는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의 기분은 다음 날 회식까지 이어졌고 굳이 내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기분을 눌렀다. 회식 중, 갑자기 상사가 내게 던진 핀잔은 취기 오른 분위기에 파동을 일으켰다. 차례로 나에게 꽂히던 눈빛. 전에 개인적으로 들은 적 있는 말이기도 했고 앞선 그 연락으로 자리에 집중하지 못하던 나의 표정은, 사람들에게 자의적으로 읽혔다.


그리고…


막내를 힘들게 한 전체 회식이 사라졌다(!)



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겠어


 남들에게 포착된 순간의 기분은 그 자체로 나의 선호가 된다. 그들이 기억하는 한 영원히. 저번에 햄버거 안 좋아하는 거 같던데. 혹은 누구 좋아하죠? 표정은 가끔 의미를 띤 표적이 됐다. 그때부터 표정이 점차 어색해졌다. 힘들 때도 좋을 때도 뭉그려진 표정을 냈다. 이제는 무슨 표정인지 궁금해할 만큼 물에 물 타고 술에 술탄 것 같은 표정을 짓기 능숙해졌다. 나의 느낌보다는 상대와 사회의 분위기를 중시한다. 외부 감정을 잘 살피고 눈치를 재빨리 본다. 내 감정과 뒤섞인 사회적 분위기는 적절히 회색으로 표현됐다.




 사람들이 왜 전처럼 웃지 않느냐 묻는다. 회사가 널 이렇게 변하게 한 거냐 묻는다. 꺄르르 터지던 웃음이 좋았노라 말한다. 감정을 드러내기 두려워졌다. 내게서 나가는 모든 것은 때론 사람들의 오해로 남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좋을 게 없었다.


 감정의 요동침이 싫어 명상까지(!) 배웠다. 명상을 할때 우후죽순 뻗어가는 다른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잡아오곤 한다. 나의 여러 생각, 감정과 마주하며 감정을 잘 다루는 프로 직장인이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남들은 어떻게 표현하나 싶어서 표정을 살핀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떻게 발화하는지 잠잠하게 지켜본다. 크게 행복해 보이는 순간도 힘든 순간도 없어 보인다. 아리송한 얼굴들. 더 큰 어른이 되면, 나이를 몇 살 더 먹다 보면 얼굴엔 자신이 잘 짓는 표정대로 주름이 잡힌다. 그분들의 얼굴은 대체적으로 진중해 보인다. 많이 웃지 않은 탓에 근육은 경직돼있다.


 가끔 소녀, 소년 같은 어른을 만나기도 한다. 탁 터뜨리듯 웃음 짓고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표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들의 얼굴 근육은 대체로 경쾌하다. 얘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갈피 못 잡은 주름이 우왕좌왕, 기분대로 마구! 예쁘게 잡힌 모습. 그분들을 보며 사랑스러워 웃음 짓는 나를 봤다. 저게 내가 나이 든 모습이 됐으면 했다


두려워졌다. 늙기 전에 내 모습 잃을까봐


 이제 눈치보지 않고 감정을 담뿍 느끼며 살고 싶다. 감정이 없는 사람의 메마름과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의 촉촉함 중에서 난 후자를 택하겠다. 힘들면 알아달라 인상 찌푸리고, 기분 좋으면 아이 마냥 웃겠다. 좋은 걸 표현하고 살기에도 시간은 너무 짧다. 힘든 건 힘들다 표출하면서 살아야 한다.


 한국인들만 앓는 병이 있단다. 화병. 화를 누르다 보면 응어리로 얹힌다. 화병과 사회성을 동시에 얻는 일거양득인 셈이지. 인생 목표 추가. 다른 병도 싫지만 화병은 절대로 앓지 않겠다는 것. 그거 하나 나를 위해 지키면서 살자.


 요새 가끔은 우울까지 즐긴다. 우울한 상태로 내버려 둔다. 너무 들뜨지 않은 기분이 퍽 맘에 든다.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기분이 좋아 미칠 때는? 그때도 내버려 둔다. 맘이 맘껏 아우성을 치도록 그저 놔두고 관망한다. 춤도 막 추고 신나면 신난다고 소리도 꺅 질러보자. 감정이란 자고로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신께서 감정을 괜히 만들진 않았을 텐데. 이왕 인간으로 태어난 거 감정을 담뿍 느끼면서 살자. 특권을 누리면서 즐기면서 살겠다. 감정은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느끼는 만큼 느끼고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자 다짐했다.


 




 대신, 어느 정도 '정도'는 정하려 한다. 감정이 쉽게 오르락 내리락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이따금씩 감정이 날 지배할 때 나는 그의 충실한 종이 되기 때문이다. 난 감정과 함께 살고 싶은거지, 감정으로 살고싶은 게 아니다.


 앞으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은 마음 깊숙이 묻겠다. 내가 묻은 그 감정은 시간지나 괜찮아진 내가 꺼내 보곤 대수롭지 않게 없애버리거나, 훌쩍 지난 시간이 나도 모르는 새 녹여 없앨 것이다. 그러니 마주할 용기가 없다면 그저 깊숙이 묻어두자. 언젠가 다시 만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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