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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Nov 25. 2020

나의 적절한 온도를 찾는 중입니다.

나도 모르는 나에게 바치는 나만의 개똥철학 안내서



이래라저래라. 간섭 많은 세상이다. 유튜브에서나 책 속에서나 자칭 타칭 인생 고수들이 어찌나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들이 많은지. 내 인생에 참고서가 되어주는 건 좋다만 어째 점점 간섭하는 느낌만 든다. 서로 결이 다른 방식의 삶이 모두 '내가 교과서야'하고 아우성치는 느낌. 책을 읽긴 읽어야겠는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고르는 것부터 퍽 난감하다. 아직 고르기도 전인데, 빨리 내가 말해준 대로 인생을 살라고 재촉하기만 하는 세상. 이것도, 저것도 따라 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예를 들면 이렇다. 화려한 여행사진 썸네일과 함께 올라온 '퇴사 후 찾은 나의 인생 이야기'라는 제목에 혹해서 눌러본 글에는 '욜로에 속지 마세요'라는 댓글. 두 번째 예시는 이렇다. <죽은 시인의 사회> 존 키팅 쌤은 말했다. "현재를 즐겨라. 너의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그럼 서장훈 씨는 말하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사람 없다? 다 뻥이에요!"



이별 후 눈물을 흩뿌리며 찾아본 연애 유투버들은 또 어떻고? '연락하지마세요! 완전 을되는 겁니다. 절대 안잡혀요.' 또 다른 남자의 생각은 다르다. '적극적인 여자가 되어야죠. 연락하세요. 지금이 적기입니다.'


…….


이내 뇌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팡하고 터져버리고 만다. 혼란하다, 혼란해.


정신차려이각박한세상속에서!!



꼰대가 없어졌다고 누가 그래. 아무래도 오프라인 꼰대들이 온라인으로 숨어들어 우리 인생을 갉아먹고 있는 게 틀림없다. 잠깐 떠올렸는데도 벌써 머리에 뭔가가 꽉꽉 들어차서 한숨이 푹-나오고 답다압-해졌다.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함과 막막함 사이. 그 어디쯤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었다. 대체 내 인생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으려나.

 

대체 왜 너는 매번 말하는 게 달라지니?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움찔하게 된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가 표현하는 나의 삶이 자주 달라져서 그렇다. 행동, 말투, 기호, 취향이 대화 상대에 따라 날에 따라 휙휙 바뀌곤 한다. 상황에 따라 잘도 변하는 '내가 말하는 나'는 카멜레온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발라드를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저도 발라드 좋아해요. 댄스곡은 시끄럽죠"하고 맞장구를 치는 일.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방탄소년단 좋아하세요? 이번 신곡 대박 쩔죠?!"하는 눈을 빛내는 일…. 전 날, 나와 발라드 취향을 공유하고 자기도 모르게 나를 친한 사람 범주에 넣었던 사람은 의심의 눈초리를 띄고 나를 바라본다. 쟤, 여간해선 믿을 수 없겠다는 눈치로.  


나는 결론을 잘 내리지 못한다.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단정 지어 말하는 것도 하지 않는다. '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아.' 이건 어떤 아량이나 너른 품 같은 것이 아니라 논쟁과 갈등을 피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거다. 불행하게도 이런 행동들이 자꾸만 내 세계를 지우고 자꾸만 거짓의 나를 창조하게 한다. 배려를 갖춘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게 편했으니까. 사실 나를 정말 지치게 했던 건 줏대 없고 생각 없는 나의 마음이었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생각했다. 하나를 정하지 못한다는 것. 핸드폰과 컴퓨터가 없던 이전의 세상에서 우리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만났었다. 예전엔 주변 어른들의 말이 모두 정답이었다면 이제는 핸드폰으로 몇 번만 검색해보면 반대 논거를, 사실을 집어낼 수 있어졌다.


공부 잘해야 부자가 된다는 어른들의 말에 반감이 들 때면, 우린 핸드폰으로 검색을 한다. 10초면 반박할 수 있는 수천, 수만 가지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상처에 된장을 바르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에, 무식하게 된장을 바르던 세대는 커서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켜 지식인에 물어보는 세대를 낳았다. 그 세대는 무럭무럭 자라 이젠 핸드폰 엄지로 10초간 검색해보고 '아닌데요? 된장 바르면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데요?'하고 얘기하는 20대가 됐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주장과 라이프 스타일이 모두 논박당하는 경험을 꽤 자주 한다. 참 집요해지고 정 없어진 세상이다.


양자택일의 사회 속에서 A의 장점은 B의 단점이 되고, A의 단점은 B의 장점이 된다. 세상 모든 것은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것이 세상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원래부터 그런 걸 전혀 몰랐던 것처럼, 언제나 나는 상대가 반박하는 것이 두려워 모든 것을 뭉뚱그려 버렸다.


행동의 중심에서 나는 자주 고민했다. 고민은 취업을 준비하며 더욱 깊어갔다. 자기소개라는 것도 내가 나를 알아야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나의 이름 안에 내가 정작 나의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위기감이었다.




내 경험들을 톺아보고 나의 적정온도가 몇 도인 지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겠다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부끼는 감정을 몇 도까지 놔둬도 되는 걸까? 가끔 높은 온도로 올라가는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게으르게 살아도 되나? 아니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등등. 삶의 언저리에서 자주 멈춰 서서 고민하곤 했던 것들. 버그처럼 띄워진 물음표를 놔두고, 시간이 임박해서 무엇을 골랐는지도 모르게 대충 후딱 해치워 버린 그 질문들을 다시 복기하며, 하나하나 따라가려 한다.

 

앞으로 쓸 글은 내 인생의 정답을 찾아가는 해답지 같은 거다. 가끔은 헤매기도 했고 가끔은 명쾌하게 딱 맞아떨어지기도 했던, 풀이과정이 있는 내 나름의 답이 적힌 정답지. 참고로 이건 내 문제집에 있던 별책부록이니까, 다들 자기 자신의 문제에 내 해답지를 이용하지는 말길.


나의 글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또 다른 족쇄로 작용하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소리다. 그냥 나의 풀이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정답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동참하기로 결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함께 걸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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