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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Oct 17. 2021

모르는 번호는 자꾸 쌓이는데, 부모님 번호는 못 찾겠다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 이재명의 하루 일과는 어때요?"라는 질문에, "하루종~일 전화하고, 하루종~일 뭘 보고!"


이 장면을 보면서 씁쓸한 미소가 났다.


비단 이재명 후보만의 일일까. 정치적 사안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게 바로 의원과 보좌진의 핸드폰이다. 성난 시민들이 문자 행동을 할 때도 가장 먼저 울려대는 의원들의 핸드폰, 의원이 검찰에 고소가 됐다? 하면 확인 전화는 기본이요, 의원이 낸 법안, 성명, 발언 등등으로 인터뷰하기 급급하다.


국정감사 시즌에는 더한다. 기자들 연락처에 더해, 정부부처 이름 모를 사람들의 연락처는 덤이다. 부처와 직책, 이름으로 쏟아지는 전화에 한쪽 어깨론 핸드폰을 다른 한쪽으로는 열심히 필기를 해야 한다.



이 일을 하기로 한 자들의 숙명이다

모르는 사람과 하하호호 업무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 계속해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기가 부재중으로 흔적을 남기기 전에 받는다는 것, 받아야만 한다는 것.


언제는 핸드폰을 들고 엄마에게 전화를 하려다 울적해졌다. 전화기록을 눌러서 전화를 거는 내 습관상, 전화기록 버튼을 눌렀는데, 어째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엄마와 아빠 번호가 나오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는 자꾸 쌓이는데, 서로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어째 그 번호들에 부모님 번호는 묻히고 만다.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번호는 이렇게나 많은데 정작 중요한 번호가 없어진다.



퇴사하면 하고 싶은 것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 일을 그만 두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있다. 핸드폰 바꾸기, 그리고 카카오톡 탈퇴하기


더덕더덕 붙어있는 카카오톡 추천 친구와 저장된 얼굴모를 사람들의 번호를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프로필로 나의 인생을 엿볼 수 없게 할 거다. 사랑을 속삭이는 데에만 쓰기에 벅찬 여생을 보내고 말겠다. 소중한 사람들의 흔적과 추억만 남기고 싶다. 정말 내 삶에서 챙겨야 할 것들만 챙기면서, 내 사람들만 챙기면서 안부를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그냥 그렇다. 지나가는 밤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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