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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Jun 06. 2022

국회 보좌진의 안온치 않은 나날들

견뎌내야 할 것을 알면서도 느끼는 나약함, 그 속에 가득한 번민

조심스레 공개하는 2022년 5월 어느날의 일기



처음으로 연차를 냈다.



회사를 다니고 나서 처음으로 누려보는 연차. 내가 원하는 때 자유로이 쉴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정말이지 너무 좋다. 


사람들 다 일하러 갔을 때 나만 쉬는 기분이란. 서울숲에 왔는데 사람들 아무도 없어서 돗자리 펴놓고 책도 읽고 잠도 잤다. 책 좀 더 보다가, 혼술이 하고 싶어져 스팟을 찾다가, 내가 좋아하는 카페를 갔다가, 내부 인테리어 중이라고 해서 다른 카페로 들어왔다. 





혼자 있을 때면 항상 고민을 한다. 여럿과 있을 때도 생각도 고민도 많이 하는데, 특히나 혼자 남겨져있을 때는 생각을 주체하지 못하는 탓이다. 고민의 끝에 항상 해답은 없지만 그래도 고민하고, 그리고 글을 쓴다.  나의 정체성은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항상 고민이 많은 나. 언제쯤 덜 힘들까, 덜 불안할까 싶지만. 스물하고도 후반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익숙해지지 않은 걸 보면 그냥 앞으로의 인생도 그럴까 싶고. 불안함이 가족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불같이 번져버리는 게 문제라면 큰 문제. 


'저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요, 아마 당신도 이 상황이 되면 이러실 걸요?' 마음 속으로 항변해보지만 내가 선택한 삶이니 내 뱉기는 창피하다. 




국회 보좌진은 언제나 불안하다. 

국회 보좌진의 삶이란. 불안과 불안의 연속이다. 의원의 의중은 물론, 의원실 직원들의 판단에 따라 목숨줄이 이리 저리 움직이는 이들이니. 현재 나는 4개월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 조차도 한시적인 일이라 목을 내어놓고 기다리는 심정이다. 끝나고 나면 커리어도 생기니 다른 의원실로 들어가리라 생각하며 담대한 척 하고 있는데, 시간이 이젠 3개월 밖엔 남지 않아서 마음껏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기도 좀 아닌 거 같고. 


확실한 건 계속 생각만 죽어라, 하는 버릇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힘들면 무작정 혼자 술을 마시던 내가, 누군가를 붙잡고 마음을 마음대로 풀어 헤집어 내는 내가, 이젠 그럭저럭 그냥 참아내 버리니까. 술 대신 걷기를, 말 대신 쓰기를, 불평 대신 웃기를 선택하니까. 이 삶에 대한 체념이자 적응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단, 연인에게는 예외다. 술만 마시면 ‘이래도? 이래도 안떠날래?내가 이렇게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악을 지르듯 마음을 질러버리니까. 한숨이랑 섞어 내뱉는 “주원아 끊어. 이제 자..”라는 목소리는 왜 이렇게 속이 상하는지.  그에게도 여전히 곤혹이겠지. 좀 더 담대하게 혼자 설 수 있으려면 좋을텐데 아직은 사람에 기대고 싶은 못난 맘 때문이다. 삶이 불안해서, 직이 불안해서 사람에게라도 기대고 싶은 못난 맘 때문이다. 




나의 삶은 한마디로, 오징어다. 


오징어를 배송할 때 게를 같이 넣는다고 한다. 안 그러면 제 풀에 지쳐서 배송되어 오는 중간에 죽어버리지만, 게와 같이 있으면 물리지 않기 위해 이리 저리 피해 다니느라 죽을 생각도 못한다고. 어쩌면 내 삶이 게와 같이 배송되는 오징어같다는 생각. 만약 게가 없다면 난 벌써 죽어버렸을지 모르겠다. 무료함에 잠겨 죽어버렸을지 모르겠다. 


게는 내 삶의 활력을 위해 있는 존재고. 스트레스는 내가 겪는 행복을 좀 더 극대화시키기 위해, 감사함을 더 잘 느끼기 위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어쩔 수 없이 인생에 풀어진 오징어라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이라는 끝을 향해 배송되어질 오징어라면 게에 물리지 않도록 계속 열심히 피해 다니리. 스트레스는 인생에 있어 당연한 거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이리.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오징어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오징어는 오징어의 삶을 살아야지, 다른 삶은 살 수 없다고 말이다. 거짓말같이 몇 년간 나를 짓누르던 압박이 조금은 덜어진 느낌, 후련한 느낌. 


막연하게 힘이 들고, 가끔 밀려오는 무기력함과 하찮음에 몸을 맡기다 잠겨 죽어버릴 것 같다면, 이젠 받아들이고 나만의 삶의 방식을 정립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징어의 삶을 보다 잘 살아내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아니더라도 오징어 만의 삶의 루틴을 정하고 잘 가꿔가야지. 


유영하듯 살면서도 킥판은 놓지 못하는사람. 내가 생각하는 나. 그렇담, 이제 유영하는 것 속에서라도 규칙을 정해야겠다. 불안해하지 말기. 믿어보기. 나를 막아서는 인생의 물줄기를 가르며 헤엄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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