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 생각
오죽헌 담장 너머로
봄이 먼저 와 있었다.
하늘은 유난히 맑고
구름은 가볍게 흘렀다.
그 아래, 오래된 매화나무 한 그루가
조용히 시간을 붙잡고 서 있었다.
몸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
혼자 서 있기 어려운 듯
부목에 의지하고
단단한 끈에 몸을 맡긴 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연약한 가지 끝에서
작고 고운 매화꽃들이
하나둘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말하는 듯했다.
“나도 한때는
당당히 서 있던 매화였다”라고.
그 고백은
쓸쓸하기보다 당당했고,
안쓰럽기보다
숭고하게 느껴졌다.
생명은 그렇게
끝까지 자기 몫을 다하려 한다는 것을
그 나무는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에 기대어도 괜찮다고,
조금 기울어져도 괜찮다고,
그래도 꽃은 피울 수 있다고.
햇살을 받아
조용히 빛나던 그 꽃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다가올 여름 장맛비와
거센 태풍 속에서도
이 나무가
또 한 해를 견뎌내기를.
그리고 내년 봄,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다시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워주기를.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날의 매화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삶을 피워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