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견딘 벚꽃 앞에서

한 칸 생각

by 한칸생각

어젯밤 비가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동네 산책길의 벚꽃이었다.

혹시 만개한 꽃들이 한꺼번에 져버리지는 않았을까 싶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다행히 벚꽃은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채 가지에 남아 있었고, 길 위에는 밤새 떨어진 꽃잎들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가지에 남아 있는 꽃들도, 먼저 길 위에 내려온 꽃잎들도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봄을 견디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이 고마워 나는 평소보다 더 천천히 걸었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생각해 보면 저 꽃들은 결코 쉽게 피어난 것이 아니다.
지난겨울의 찬 바람과 긴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서야 비로소 제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서인지 봄꽃 앞에서는 늘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아름다움은 왜 이토록 짧을까.
왜 가장 환할 때 이미 이별을 생각하게 할까.

아마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 머무는 것은 익숙해지지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은 오래 남는다.
벚꽃은 피어 있는 동안보다 지고 난 뒤에 더 깊이 생각나는 꽃인지도 모르겠다.

환하게 피어 있던 순간보다 바람에 흔들리며 흩어지던 장면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을 보면 그렇다.

문득 나 자신을 떠올려 본다.
나에게도 꽃 같은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바로 어제 같은데, 돌아보면 어느새 계절은 많이 흘러 있었다.

예전에는 봄꽃이 그저 예쁘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 짧음이 먼저 보이고 그 짧음을 견디는 마음까지 함께 보게 된다.

그래서 오늘 아침의 산책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다.

비를 견딘 벚꽃을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스쳐 가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내 앞에 와 있는 계절을 좀 더 깊이 누리자고.

인생은 어쩌면 소풍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 왔다가 잠시 머물다 돌아가는 길이라면, 이 짧은 소풍길에서 꽃 한 번 더 바라보고 바람 한 번 더 느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봄은 내일이면 또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이 더 귀하다.

인생이라는 소풍이 끝나는 날,
그래도 나는 제법 풍성하게 보고, 느끼고, 사랑하며 걸어왔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