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 생각
가지 끝에 남아 있는 감이다.
조금 있으면 바람에 떨어질 수도 있고,
까치의 부리가 나를 데려갈지도 모른다.
이제 내 몫의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괜찮다.
봄 감꽃으로 시작해
당당하게 여기까지 왔으니까.
꽃이던 시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연약했고, 작았고,
비 한 번이면 사라질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여름에 작은 감이 되었지만
햇살은 너무 뜨거웠고
비는 거칠었고
바람은 이유 없이
시험하듯 흔들었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았다.
견디겠다고 다짐한 적도 없고,
버티겠다고 애쓴 기억도 없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새
잎들이 하나둘 떠난 뒤에도
이 자리에 남아 있다.
이제 나는 안다.
남아 있다는 것은
끝까지 붙들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자랐다.
충분히 익었다.
내 몫의 계절을
성실히 지나왔다.
그러니
떨어져도 괜찮고
누군가의 겨울 풍경이 되어도 괜찮다.
까치의 배를 채우든
땅의 품으로 돌아가든
나는 부끄럽지 않다.
봄의 꽃에서
겨울의 열매까지,
비와 바람 속에서도
끝내 떨어지지 않았던
그 시간 하나로
이미 나는
내 삶을 다 증명했으니까.